과거와 현재의 형사가 무전을 주고 받아 장기미제사건을 해결한다.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극본 김은희, 연출 김원석)의 기본 골자다. 어찌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스토리다. 과학적 근거들에 기반한 사실성 짙은 작품들이, 행여 허술한 부분이라도 나올까봐 심혈을 거듭하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강렬한 염원이 두 사람을 이어줬다'는 한 줄 설명으로 끝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듣고 싶었던 이야기…'장기미제사건'
'시그널'의 구조적 허술함을 '굳이' 지적하는 이는 물론 없다. 기껏해야 시대적 고증 문제로 옥의 티가 지적되거나, 연출상의 오류로 빚어진 실수 거론 정도가 전부. 애초에 '시그널'은 이런 복잡한 구성들에 대해서는 '그냥 그렇다'고 무작정 이해시키고 시작한 드라마였다. '평행우주론' 같은 것을 끄집어내 과거의 변화가 현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를 체크하며 꼬집거나, 변화에 대한 인물들의 기억 잔류를 과학적으로 납득시킬 필요는 없다. 왜냐면, 이건 결국 그저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이 다루는 내용은 답답한 장기미제사건이다. 실제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대목은, 이런 황당한 타임워프라는 소재를 끌어들여서라도 어떻게든 속이 시원한 해결을 이뤄내고 싶다는 시청자의 갈망까지도 녹여냈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이다' 같은 전개에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하는 상황에서, 빈약한 과학적 논리를 걸고 넘어질 이유나 여유는 전혀 없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tvN의 금토블록…'영양분 짙은 토양'
현재 '시그널'은 시청률 10%에 육박했다. 2~3년 전까지 케이블 채널이 프로그램 시청률 2%를 성공 기준으로 삼던 것을 감안했을 때 엄청난 성공이며, 박수 받아 마땅할 일이다. 다만, '시그널'의 경우는 최종회가 20%에 육박했던 전작 '응답하라 1988'의 시청층을 어느 정도 넘겨받았다는 주장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게 오히려 아쉽다.
앞서 신원호 PD의 '응답하라' 시리즈, 나영석 PD의 '삼시세끼'나 '꽃보다' 시리즈 등이 최근 tvN의 금토 블록 시간대에 높은 시청률이라는 화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영양분 짙은 토양을 배양시켰다는 점 역시 같은 맥락이다.
◇고작 케이블? 연기력 '짱짱한' 주연배우들
김혜수나 조진웅, 이제훈을 비롯해 연기력 탄탄한 주조연 배우들이 혹여 생길 지도 모르는 작품 속 빈틈을 메웠다. 이들은 사실 지상파 드라마에서조차 섭외가 그리 쉽지 않은 배우들의 조합이다. 지상파에서 "그런 배우들이 출연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초라한 볼멘 소리를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는 '응답하라' 시리즈나, 여타 케이블 드라마들이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배우들을 활용해 큰 관심을 불러모으며 '라이징 스타'를 배출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다. 검증되고 완성된 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워, 작품 초반 연기력 검증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여 단기간에 시청률 상승을 일궈내는 데 주효했다.
◇공감+공분 소재들…권력에 맞서는 개인
'시그널' 속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개인의 이야기. 에피소드에 따라서 재벌의 갑질이나, 공권력과 결탁해 비리를 저지르는 모습도 등장한다. 힘 없는 착한 개인, 좋지 않는 환경에서 비뚤어진 살인마 등 구미를 당길만한 흥미로운 소재투성이다. 모두의 공분을 불러 일으키게 만드는 소재들이 상당수 활용된 것. 보는 내내 몰입해 그들을 응원할 수 밖에 없다.
'시그널'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다. 하지만 논리가 빈약한 황당한 소재가 이른바 '대박'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전작 '응답하라 1988'의 후속 편성 이득, 영양분 충만한 tvN 금토 블록의 토양, 검증된 스타 배우들과 스타급 피디·작가, 실제사건을 모티브로 한 에피소드, 달라진 tvN의 위상 등이 모두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얻어진 결과다. '시그널'의 성공을, 그저 단순히 얻어걸린 운 좋은 흥행이 아닌, 여러 흥행 조건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집약된 '계획된 성공'이다. / gato@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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