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라는 수식어에 부담감이 커요. 저에게 보내주시는 관심을 책임감으로 느끼며 연기하고 있습니다.”
배우 박소담이 연극 ‘렛미인’으로 돌아왔다. 자그마치 6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일라이 역을 맡았다. 무대 위에선 몇 백 년 동안 인간의 피를 먹으며 살아온 어둡고 외로운 흡혈소녀지만, 실제로 만난 그녀는 영락없는 26세 발랄한 숙녀였다.
뱀파이어에 대한 이야기는 연극 무대의 특성상 쉽게 보기 어려운 소재다. 하지만 ‘렛미인’은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매혹적이게 잘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남녀의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박소담이 지난해 개봉한 영화 ‘검은 사제들’을 통해 혜성 같이 등장한 것 같지만 사실은 대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단편영화에 출연해왔다.
지난 201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를 졸업한 뒤 상업영화 ‘마담뺑덕’ ‘상의원’ 등에 단역으로 출연하다 ‘경성학교’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그동안 많은 오디션을 보면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가 많았지만, 배우에 대한 꿈을 접을 수 없었기에 늘 행복하게 임했다고 말한다.
-요즘 박소담을 대세라 칭하는데 기분이 어떤가.
“많이 부담돼요. 대학교 때부터 단편영화나 연극을 쉼 없이 했었어요. ‘검은 사제들’ 이전에는 제가 이 정도로 관심을 받을지 몰랐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큰 보답을 해드리고 싶은 부담감은 있어요.”
-영화에서 연극을 선택한 이유가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한 것인가.
“네. ‘검은 사제들’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당시 정해진 작품이 없었어요. 연극 오디션이 크게 이슈가 됐는데 떨어지더라도 한 번 보고 싶었죠. 처음 연기를 배웠던 대학 4년 동안 학교를 쉬지 않고 다녔던 이유가 뭘까라는 고민도 했고요. 무대에서 뱀파이어를 어떻게 표현을 할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단순히 무서운 모습만이 아닌 사랑에 빠진 순수한 소녀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하고 싶었어요.”
-연극을 해서 대학 때의 감회에 젖었겠다.
“네.(웃음) 대학시절처럼 열심히 살고 있어요. 공연을 연습할 때 3시간 정도씩 하드 트레이닝을 했어요. 그래서 배우들 간에 믿음도 쌓였고 친해졌어요. 아직도 공연하기 전에 다같이 45분씩 몸을 풀고 들어가요. 음악에 맞춘 다양한 동작을 통해서 대사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요. 흐름을 잘 따라갈 수 있게끔 노력하고 했어요.”
-일라이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언니와 다르기 위해 애쓰진 않았는데 언니가 조금 더 역동적인 뱀파이어의 느낌을 표현한다면, 저는 순수한 일라이를 표현하는 것 같아요. 전 언니만큼의 에너지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언니를 보고 많이 배웠죠. 단순한 인간의 사랑이야기라면 더 갈 수 있는데, 일라이는 뱀파이어라서 표현하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일라이가 몇 백년 동안 느꼈을 외로움과 고통을 보면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도 아닌, 피를 구해다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렇게만 하면 감동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오스카와 교류에 많은 신경을 썼어요. 그래서 전체적인 어려움이 있었고 매 장면에 집중을 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오스카를 만났을 때는 순간에 집중을 했어요.”
-원작인 영화 ‘렛미인’을 그대로 살리려고 했나.
“저도 그렇고 제작진도 다른 방향으로 가야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영화는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무대 위에서는 관객들이 바로 앞에서 라이브로 보여드려야 하잖아요. 원작의 기본 틀만 가지고 왔어요. 전체적인 상황도 새로 만들려고 노력을 했고요. 외국 연출자 분이 오셔서 숲의 모양은 영국, 한국도 아닌 그 어떤, 색다른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해주셨어요. 기본은 유지했지만 다양한 것들을 시도했어요.”
-일라이를 어떤 소녀로 잡았나.
“정말 솔직한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목적을 무조건 달성을 해야 하고, 생각나는 대로 바로바로 얘기를 하고, 모든 걸 표현하는 친구라고 잡았죠. 굉장히 순수한 친구라고 생각을 했어요.”
-피를 먹는 장면은 익숙하지 않나.
“이젠 질렸죠.(웃음) ‘검은 사제들’에서도 많이 먹어봤어요. 다양한 피를 먹어봤는데 이번엔 직접 입에 넣고, 입 밖으로 흐르기도 했죠. 물엿이 들어가서 너무 달아요.”
-정글짐을 타고 연습하면서 한 번 떨어졌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 여기에 올라왔을까’라는 생각에 무서웠어요. 바들바들 떨었죠. 연습을 하다가 한 번 떨어지기도 했는데 한 이틀 정도 못 올라갔어요. 그 이후로 많은 연습을 했고 용기를 얻었어요. 공연을 하면서 건강해진 건 있는데 정신적으로는 그렇지는 않았어요. 하칸을 떠나보낼 때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고민이 많았거든요. 관계를 정리하는 순간을 이해했을 때 되게 슬프고 우울했어요. 연습을 하면서도 선배님과 서로 울었어요. 근데 그 우울함이 오래가진 않았던 거 같아요.”
-뮤지컬 진출도 계획하고 있나.
“원래 18살 때 뮤지컬을 하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저희 학교에 뮤지컬과가 없어서 연극과에 진학했지만 단편영화를 하면서 영화로 가게 됐어요. 졸업 후 노래를 배운 적은 없는데 준비가 된다면 언젠가는 꼭 뮤지컬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purplish@osen.co.kr
[사진] 정송이 기자 ouxou@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