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좀 덜 무섭지 않나요?”
무섭다는 말에 은근히 섭섭함이 쌓인 듯 박성웅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위의 질문부터 던졌다. 확실히 실제로 만난 그는 여태까지의 작품 속 모습과는 달리, 시종일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고 후배인 유승호에게 ‘사랑스럽다’고 표현할 정도로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박성웅은 영화 ‘신세계’부터 ‘찌라시:위험한 소문’, ‘황제를 위하여’, ‘살인의뢰’, ‘무뢰한’ 등 다수의 작품들에서 주로 범죄자 혹은 조직폭력배 역을 맡아 강렬한 카리스마를 뽐내며 대중들에게는 ‘센 이미지’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심지어 선(善)에 가까운 역할도 그가 연기하면 왠지 모르게 무섭게 느껴질 정도.
그런 그가 ‘검사외전’과 SBS ‘리멤버’를 통해 이미지를 반전시켰다. 각각 검사와 변호사로 여전히 범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직업이지만, 마냥 악하기만 했던 이전 캐릭터들과는 확실히 다른 성격이다. 특히 ‘리멤버’ 속에서 박성웅이 연기한 박동호는 진우(유승호 분)을 도와 남규만(남궁민 분)의 죄를 만천하에 밝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한 바 있다.
“많은 방송 관계자분들이 ‘검사외전’이나 ‘리멤버’를 보고 저에 대한 생각이 바뀌신 것 같다. 최근 ‘검사외전’ VIP 시사회 이후 뒷풀이에 참석했는데, 류승완 감독이 ‘그런 모습도 있었냐. 왜 안 보여줬냐’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시켜야 하지. 나 안 불러줬잖아’라고 했다. 최동훈 감독도 다른 모습 본 것 같다고 하더라. 저는 ‘검사외전’도 드라마 촬영 때문에 개봉하고 나서 봤다. 20대 중후반 여자 분들이 ‘박성웅 정말 귀엽지 않냐’라고 말하시는 걸 들었다. 응원해주시면 힘이 난다. (귀엽다는 반응에 대한 소감은?) 저 원래 귀엽다. 귀여운 모습도 보여줬었는데 다들 무섭다고 하셨다. 웃어도 무섭고 가만히 있어도 무섭다고.”
사실 박성웅이라는 배우의 가장 큰 반전은 그간 해왔던 역할들과 어울리지 않게(?) 법을 전공했다는 점이다. 누구보다도 법과 거리가 멀 것 같은 그가 한때는 법조인을 꿈꾸는 법학도였다는 사실은 여느 드라마보다 놀라운 반전을 선사했다.
“전공 무지 살리고 있다. 다음 작품에서도 검사로 나온다. 법대를 갔다 온 건 ‘집안에 판·검사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아버지 말씀 때문이었다. 근데 군대 갔다 와서 보니 아버지 인생 대신 살아드릴 수도 없는 거고 좋아하는 일 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게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배우를 시작한 건 맨땅에 헤딩이었다. 지금 위치까지 오리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모래시계’ 보면서 민수 형님한테 꽂히고 대중들한테 희로애락을 줄 수 있는 것도 좋을 것 같더라.”
그동안 해 온 역할들의 이미지 때문일까, 아니면 다소 강한 인상 때문일까. 박성웅이 실제로도 후배들에게 엄격할 것이라는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자신을 ‘귀엽다’고 표현한 것과 일치하게 박성웅은 오히려 후배들의 눈치를 본다고 밝혔다.
“제가 벌써 연기한지 20년이 됐다. 데뷔 초에는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는데’라고 생각했다. 그 꿈이 실현되고 있고 지금 신인들을 보면 ‘저 친구들도 10년 전 나랑 똑같겠지’라면서 선배로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하도 나를 무서워하니까 농담을 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되게 썰렁하다. 내가 먼저 무장해제를 시켜줘야지 가깝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되게 부담스러워 하더라. 그래서 ‘웃기면 웃어도 된다’고 하면 억지로 웃는다. 동생들 케어하는 게 제일 힘들다. 선배들한테는 오히려 막 하는데 동생들 눈치를 본다.”
이렇듯 한층 유쾌해진 역할에 맞춰 박성웅이 특별하게 신경 쓴 부분은 다름 아닌 의상이다. 실제로 ‘리멤버’ 속 박성웅을 보면 화려한 색상과 패턴이 돋보이는 슈트 차림인 것을 알 수 있다.
“첫 촬영이 기억이 난다. 살인 현장 가서 검증하는 장면이었는데, 흰 옷에 핑크 셔츠를 입었었는데 몸이 몸인지라 잘 어울리더라. 그런데 PD가 너무 평범하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래서 다리를 걷어 올렸다. 그 다음에는 드라마에 처음 등장할 때 입었던 파란 슈트를 입고 100미터 밖에서 걸어오는데 사람들이 빵 터졌다. 의상팀이 어디서 이런 걸 구해오는지 모르겠다. 사실 마지막에는 그 중에 한 벌을 샀다. 오렌지색 코트인데 주변 사람들에게도 ‘괜찮냐’고 물어봤다. 보라색 슈트도 있었다. 처음엔 너무 싫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예뻐 보이더라.”
이처럼 그간 맡아왔던 역할들과는 달리, 본체 박성웅은 유쾌하고 농담을 즐겨하는 평범한 40대 아저씨였다. 또한 현재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를 촬영 중인 그는 본격적으로 코믹한 연기를 시도하며 이미지 변신에 나설 예정이다. 올해도 역시 ‘열일’할 준비를 마친 박성웅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올 한해도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작품 통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 배우들한테는 팬분들의 응원이 버틸 수 있는 힘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인생에 있어서 시련이 오더라도 그런 걸로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40대 중반에 애도 있는 아저씨를 좋아해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 jsy901104@osen.co.kr
[사진]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