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첫사랑의 대명사는 수지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주인공 승민(이제훈 분)의 대학 동창 서연 역을 맡은 그는 청순한 미모와 새침데기 같은 면모로 뭇 남성들에게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환기했다. 영화가 개봉한 지 4년 가까이 됐지만, 국민 첫사랑의 자리는 아직도 견고하다.
그런 첫사랑의 아성에 도전하는 이들이 영화 '순정'의 두 주인공 도경수(엑소 디오)와 김소현이다. 특히 도경수는 좋아하는 소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발 벗고 나서는 순수한 모습으로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려 볼 만한 첫사랑 소년의 이미지를 복기했다. 어쩌면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여성들이 기억하는 첫사랑, '남자 수지'의 영역을 개척할 지 모른다.
'순정'은 라디오 생방송 도중 DJ에게 23년 전 과거로부터 편지가 도착하고, 이를 통해 그가 애틋한 첫사랑과 다섯 친구의 우정을 기억하게 되는 내용을 그린 감성 드라마다. 도경수는 극 중 1991년, 여름 방학을 맞아 골목 친구들과 함께 고향 섬마을에 돌아온 열일곱 살 소년 범실 역을 맡았다. 범실은 무뚝뚝하지만 좋아하는 수옥에게는 헌신적인 인물.
도경수는 이 범실이라는 인물을 순수한 눈빛과 안정적인 연기로 소화했다. 무엇보다 특유의 맑고 깊은 눈빛은 첫사랑에 빠진 소년의 풋풋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제격이다. 그간 미스터리한 소년('괜찮아 사랑이야'), 반항적인 아들('카트'), 사이코패스('너를 기억해') 등의 캐릭터를 통해 강렬한 연기를 보여줬던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도경수가 맡은 범실이라는 인물은 그간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멜로 영화의 순정남 계보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눈길만으로 첫사랑의 두근거림을 표현했던 '건축학개론' 속 이제훈과 여성 관객들의 모성애를 자극했던 '늑대소년' 속 송중기 등의 모습이 '순정' 속 도경수의 모습과 겹친다. 다만, 이제훈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이고, 송중기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또 '건축학개론', '늑대소년' 속 주인공들이 남성 감독이 그려낸, 남성들의 공감을 산 캐릭터라면, '순정' 속 범실은 여성 감독과 제작진의 생각과 이미지가 반영된 인물이다. 그런 만큼 여성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다른 캐릭터 보다 순수하고 헌신적인 범실의 모습에서 첫사랑 판타지를 충족시킬 수 있을 법 하다. 여성 제작진이 끝까지 밀고 나갔다는 수옥을 향한 범실의 우산 키스신(진짜 키스가 아닌 우산에 키스를 하는)이 일례다.
첫사랑을 그린 도경수의 모습은 '건축학개론' 수지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이미지나 연기 면에서 모두 그렇다. 첫사랑을 그려냈던 청춘 스타들은 대부분 해당 배역을 통해 연기자로서 더 많은 사랑을 얻는다. 수지 뿐만 아니라 이제훈과 송중기 역시 '건축학개론', '늑대소년'을 통해 스타로 성장했고, 더 많은 활동 기회를 얻었다. 도경수 역시 '순정'을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 선배들의 뒤를 밟을 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순정'은 24일 개봉한다. /eujenej@osen.co.kr
[사진] '순정' 스틸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