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정을 해 보자. 인생의 반 이상을 열렬히 미워하던 녀석이 내가 잠깐 학교를 비운 사이에 내 여자친구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게다가 여자친구는 나와 매번 싸움을 벌이면서도 그 녀석을 모질게 끊어내지 못한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일 터다. 현재 ‘치즈인더트랩’ 박해진이 처해 있는 상황이다.
지난 22일 방송된 tvN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에서도 유정(박해진 분)의 수난은 계속됐다. 여자친구 홍설(김고은 분)은 “약속한 일이니 끝까지 하고 싶다”며 철천지 원수 백인호(서강준 분)에게 과외를 해 주겠다고 말한다. 게다가 “오늘 뭐 했냐”는 안부 인사에도 백인호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드는 홍설의 모습은 유정을 좌절시키기 충분했다.
유정은 홍설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역할을 백인호에게 번번이 뺏겨 왔다. 복통을 호소하며 갑자기 쓰러진 홍설을 업어 병원으로 옮긴 것도 백인호, 스토커 오영곤 앞에서 직접적으로 홍설을 보호한 것도 백인호였다. 지난 방송에서 유정은 졸업시험을 치르는 홍설에게 답안지와도 같은 족보를 건네기는 했지만, 이조차도 종국에는 여자친구를 궁지로 몰게 되니 참으로 얄궃은 운명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정이 생각해낸 고육지책은 ‘해탈’이었다. 그간 홍설은 유정이 백인호와 오랫동안 앙숙으로 지내왔음을 알면서도 그 사이에 패인 골을 섣불리 메우려 했다. 이 과정에서 홍설은 백인호와 만났다는 사실을 숨기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홍설과 헤어지지 않으려면 매번 이를 넘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유정의 선택은 몹시 현실적이었고, 그래서 더 짠했다. 혹여 남자친구가 화를 낼까 굳은 표정으로 백인호의 이야기를 꺼내는 홍설 앞에서 “뭐라 그러는 것이 아니다”라며 웃어 보인 유정의 미소 뒤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최근 홍설과 유정은 서로에게 더 이상 숨기는 것을 만들지 않기로 약속하며 반복되는 싸움에 종지부를 찍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홍설이 솔직하면 솔직할수록 유정은 고통스러웠다. 이전의 유정이라면 홍설처럼 감정적 혼란을 주는 인물을 가만 둘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정은 홍설을 향한 넘치는 애정에 그만 ‘보살’이 돼 버렸다. 어느덧 홍설 앞에서만은 ‘예스맨’이 된 유정의 이 같은 노력이 보상을 받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치인트’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