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맨’을 대표해 노래 대결을 벌인 정은지와 에일리. 두 사람의 가창력 평가보다 중요한 건 세대를 넘나드는 소통의 힘이다.
지난 23일 오후 방송된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이하 슈가맨)은 정일영과 K2 김성면이 소환된 가운데 각각 에일리와 정은지가 팀을 이뤄 대결을 펼쳤다.
우리나라에는 각자의 개성을 살려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들이 많지만 가창력에 대한 평가는 천편일률적이다. 마치 매뉴얼 따라 정해진 듯 흐른다고 볼 수 있다. 무조건 높은 음을 내는 가수에게 점수가 쏠린다. 사실 이 같은 심사가 음악을 즐기는 데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날 출연한 정은지와 에일리 모두 고역대를 자랑하는,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들이다. 누가 더 잘한다고 평가하기가 애매하지만 ‘슈가맨’에선 객관적인 수치를 따지는 그런 평가와는 다르다. 물론 마지막에 10~40대까지 투표를 통해 점수를 내지만 그 작업은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쇼맨십이다. 거기까지 가기 위한 긴 여정이 더 의미 깊고 재미있다.
이날 2000년 방송된 KBS 드라마 ‘가을동화’의 OST를 부른 정일영이 출연했다. 그는 무대에 등장해 인기곡 ‘기도’를 불렀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미성인 목소리가 놀라움을 안겼다. 그러나 10대에선 그를 알지 못했고 인지도가 낮음에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일영의 노래는 작곡가 유재환이 편곡을 맡았고 에일 리가 노래를 불렀다. ‘기도’는 감미롭고 애절한 발라드였던 원곡을 기타 8대의 밴드 사운드를 강조한 브리티시 록으로 재해석됐다.
이어 K2 김성면이 ‘그녀의 연인에게’를 부르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는 1992년 피노키오 1집 앨범 '다시 만난 너에게'로 데뷔했다. 젊은 층은 그의 존재를 잘 모르지만 노래는 세대를 잇는 연결고리였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로 따라 부르게 만들었다. 김성면은 객석의 환호를 유도하며 분위기를 띄웠는데 애절하고 구성진 목소리로 여심을 사로잡았다.
김성면의 ‘그녀의 연인에게’는 섬세한 보컬과 감성적인 현이 강조된 애절한 록발라드인데 이날 원곡에 오케스트라 연주가 더해져 드라마틱해진 팝 발라드로 재탄생했다. 정은지는 차분하게 시작하다가 차츰 시간이 흐를수록 파워풀한 보컬을 자랑해 귓가를 자극했다.
판정단의 투표 결과, 정은지가 간발의 차이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에일리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슈가맨’은 대한민국 가요계에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사라진 가수, 일명 ‘슈가맨’을 찾아 나서는 프로그램으로 여타 오디션 경쟁 예능과 다르다.
팀을 나누어 승부를 가르는 형식을 띄고 있지만 이곳에서의 승부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전성기를 뒤로 하고 사라진 사람들,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는 추억의 노래를 재조명하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향수를 자극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내는 ‘슈가맨’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소중한 순간을 선사해줄지 기대된다./ purplish@osen.co.kr
[사진]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