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옥 작가가 필력을 잃은 것 같다. 본인 스스로도 전작보다 한층 발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한탄 섞인 말을 남긴 것을 보면 말이다.
지난 2000년 MBC 베스트극장 신인 공모에서 당선된 김 작가는 데뷔 후 드라마 ‘아내의 유혹’ ‘다섯 손가락’ ‘왔다 장보리’ 등 매년 히트작을 탄생시키면서 이른바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특히 지난 2014년 방송된 MBC 주말극 ‘왔다 장보리’를 통해 국민적인 사랑과 관심을 받았는데, 덕분에 MBC 연기대상에서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1년 만에 MBC 주말극 ‘내 딸 금사월’을 통해 복귀한 김순옥 작가의 대본은 왠지 모르게 애정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30%대 전국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아무래도 어디까지 나가는지 궁금해서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많은 것 같다.
김 작가는 이번에도 어른들의 탐욕으로 인해 딸이 뒤바뀐 설정, 신분상승을 꿈꾸는 천하의 못된 여자주인공 등 ‘왔다 장보리’에서 봤던 서사 구조를 그대로 차용해 인기에 편승하려는 게으름을 보였다. ‘왔다 장보리’에도 마음이 약해 힘을 못 쓰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긴 했지만 ‘내 딸 금사월’ 만큼 답답하고 보기 힘들진 않았었다.
첫 방송을 앞두고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제작진은 “따뜻한 모녀 이야기를 그리는 가족드라마”라고 소개했지만 반대로 나가고 있다. 갈등이 갈등을 낳고, 복수와 음모가 혈안이 돼 있는 캐릭터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가족의 사랑을 느끼기 힘들다.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의 핵심은 신득예(전인화 분)의 복수. 제목엔 금사월(백진희 분)이 앞에 나왔지만 그녀의 엄마 득예가 드라마를 이끌고 왔다. 더 문제가 된 건 강만후(손창민 분)와 득예의 갈등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회 반복됐다는 것. 득예가 복수를 준비하고 들킬 뻔 했다가 다시 위험을 벗어나는 과정이 몇 회째 계속된 것이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어린 딸은 눈물만 흘려 이른바 ‘고구마 여주’라는 말까지 붙었다. 이제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지만 모녀의 사랑은 언제 시작될지 모르겠다.
걸출한 여성 작가들이 드라마 시장에 진입하고 영역 확장을 안정화시키면서 여성화에 대한 시각 쏠림 우려가 화두가 되고 있다. 여성작가는 여성의 정체성과 자의식, 여성의 목소리를 작품에 투영할 수 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현실을 반영하는 것. 하지만 김 작가의 작품에는 탐욕에 사로잡혔거나 용서와 자비를 베푸는 여자 밖에 찾아볼 수 가 없다.
순종적인 여인상을 강조하고 있는 건데, 대중의 흥미를 끌기 위해 정형화된 인물과 갈등 요소를 부각시키는 관습적인 관행의 산물이다. 물론 작가의 자율성이 시청률 압박 때문에 여성의식을 표출하는 데 한계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높은 수치를 최고로 여기는 시청률 만능 지상주의와 맞물려 TV 드라마의 문제가 여성작가의 책임으로 환원되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사실 여성작가가 드라마에서 여성의 정체성과 목소리를 담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물론 드라마는 PD, 배우, 스태프 등의 공동 생산물이지만 대본의 1차적인 집필권이 작가에게 있기 때문에 작가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김순옥 작가가 전작과 차별성을 두면서 말도 안 되는 복수에 치중하지만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 같다./ purplish@osen.co.kr
[사진]MB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