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풍성하게 만들었던 것은, 디테일이 살아넘치는 캐릭터들의 향연이었다. 특히 그중에서 '정봉'을 연기했던 안재홍은, 실제 정봉이 그 자체인 것처럼 완벽 빙의해 모두를 집중케 했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고민과 연구 끝에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소화하는 '진짜 배우' 안재홍을 OSEN이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응팔' 속 정봉이와 꼭 닮은 말투로 "난 정봉이와 정말 다르다"고 말하는 것만 봐도 왠지 미안하게도 웃음이 났고, 강동원과 현빈의 패러디 장면을 이야기하다가 "멋있는 사람은 멋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확실한 건, 직접 만난 그는 정봉이만큼 매력적이었다는 사실.
■이하 안재홍과의 일문일답.
-'응팔'이 끝난지 한 달이 넘었다. 요즘 어떤가.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주고, 반가워해주신다. 그렇다고 이전과 삶의 방식이 바뀌거나 하진 않았다. 똑같이 살고 있다. 집에서 TV를 보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하면서."
-갑자기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나서 불편한 점은 없나.
"아직까지 불편한 건 없다. 그저 신기하고 기분좋다. 정봉이 캐릭터가 작품 속에서 옷을 컬러풀 하게 입지 않았나. 옷을 캐릭터처럼 입고 다니면 알아보는데, 그게 아니고 평소에 입던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으면 못 알아본다.(웃음)"
-'정봉=안재홍'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난 정봉이랑 많이 안 비슷하다. 단편영화를 찍을 때는 제 안에 있는 성격을 찾아서 연기 했었다. 아무래도 우리 근처에 있는 영화를 다루다 보니깐, 제 안에서 캐릭터를 찾으려고 했다.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정봉이를 맡게 됐을 때 비슷한 구석이 없었다. 난 착한 사람도, 순둥이도 아니다. 그래서 많이 고민하고 연구했다. 천하의 순둥이 정봉이의 앉는 자세는 어떨까. 왜 문어제 형식으로 말을 할까. 왜 이렇게 하게 됐을까. 내가 이해를 해야, 시청자도 이해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 정당성이 생긴다. 내가 정봉이에게 가보고 싶었다. 모험이었다."
-역시 정봉이의 명장면은 '강동원 우산씬' 아니었나.
"강동원 우산씬.(웃음) 정말. 그렇게 편집이나 카메라 앵글까지 똑같이 하실 줄은 몰랐다. 타이밍까지 똑같더라. 재미있었다. 민지에게 그 장면을 준비할 때 해당 영화 '늑대의 유혹' 동영상 클립 링크를 보내줬다. (강동원) 모사를 했던 거 같다. 사실 그 장면은 한국 영화에서 남을 만한 명장면 아니었나. 기억나는게, 극장에서 봤는데, 그 장면이 나올 때 관객들이 소리를 질렀던 장면이다.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그걸 최대한 똑같이 하고 싶었다. 눈을 깜빡거리는 것은 물론, 우산을 잡고 있는 집게 손가락까지 그대로 따라했다. 강동원 선배님은 손가락이 길어서 잘 보였는데, 난 짧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다시 보시면 꼭 챙겨봐달라."
-다른 누구도 아닌 '강동원'이다. 혹시 부담은 없었나.
"다시는 이럴 기회가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 오히려 이 장면을 과장하거나 살을 덧붙이면, 희화화가 될 것 같았다. 그건 예의가 아니다. 최대한 담백하고 똑같이,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봉의 감정이었다. 그게 핵심이었다. 정봉이에게는 패러디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만옥이를 운명적으로 만나는 것이 중요했다. 그걸 상기하면서 영상이랑 똑같이 하려고 노력했다. 최대한 왼쪽으로 동공을 보내면서, 이빨이 보이게 활짝 웃어야 한다. 옆으로 입을 벌려야 하는데, 찍다가 경련이 일어났다. 볼이 덜덜 움직이더라. 힘들었다."
-강동원이 인터뷰에서 그 장면을 '잘봤다'고 언급했다. 알고 있나. 실제로 만나본 적은 있나.
"얘기만 많이 들었다. 인터뷰를 하신 것도 봤다. 영광이었다. 민지와 그걸 촬영하고 그런 얘기를 했다. '강동원 선배님이 이걸 보실까'라고. 혹시라도 나중에 작품에서 만난다면, 영광일 거 같다. 그러고보니 공유 선배님에서도 영화 '남과 여' 인터뷰에서 '잘 되는 거 같아 기분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걸 봤다. 최고로 멋있는 사람들이 칭찬을 해주시니깐 기분이 너무 좋았다. 역시 멋있는 사람은 멋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같다.(웃음)"
-'응팔'에서 현빈의 거품키스도 패러디했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동작을 구분동작으로 나눠서 연습, 또 연습했다. 우산도 그렇고 거품도 그렇고, 그분들이랑 다르게 생겨서 재미있게 봐주신 것 같다. 아마 내가 아니라 잘생긴 친구들이 했으면 욕을 먹었을 거다.(웃음)"
-정봉의 마지막은 '집밥 봉선생'이었는데.
"'응답하라 1988' 오디션을 보기 전에 파마머리를 하고 다녔던 적이 있다. 그때 백종원 선생님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이 많이 했었다. 그걸 신원호 감독님이나 스태프에게 한 적이 없는데 제 미래로 그려져서 신기해했다. 프로그램을 찾아서 볼 정도로 (백종원을) 좋아한다. 매력이 있는 분이다. '집밥 백선생'을 봐도, 김구라에게도 전혀 안 밀리고, 장악력이 대단한 거 같다." / gato@osen.co.kr
[사진] 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 '응답하라 1988' 캡처. 영화 '늑대의 유혹'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