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데이트하러 간 송혜교가 옆자리에 앉은 송중기에게 소곤댄다.
"나 극장에 오면 이때가 제일 설레요. 불 꺼지기 바로 직전"(송혜교)
그러면, 송중기는 기다렸다는 듯 재치있게 답한다.
"난 태어나서 지금이 가장 설레요. 미인이랑 같이 있는데 불 꺼지기 직전"(송중기)
이런 식이다. 다른 말은 필요없다. 그냥 미(美)쳤다. 김은숙 작가는 남다른 글발로 기어이 시청자들의 항복을 받아냈다. 송중기, 송혜교 두 주인공의 차고 넘치는 미모가 1차 공격이라면, 달팽이관을 간지럽히는 달콤한 대사들이 2차 공격이다. 아무리 오글거린다, 유치하다고 외면을 해보려 해도, 어떡하나. 그냥 그대로 매력인 것을. 2회까지 방송된 '태양의 후예'는 그렇게 또 한 번 강점을 드러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난 25일 오후 방송된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극본 김은숙 김원석 연출 이응복 백상훈)에서는 '썸'을 타다 헤어졌던 시진(송중기 분)과 모연(송혜교 분)이 8개월 후 우르크에서 재회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모연은 데이트 때마다 상부의 부름을 받고 사라지는 시진에게 실망해 그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실력 없는 금수저 동기에게 밀려 교수 임용에 실패한, 힘겨운 상황. 얄미운 동기는 자신의 TV프로그램 출연 스케줄을 모연에게 맡겼고, 그와 머리채를 잡고 싸우며 거절했던 모연은 끝내 눈물을 삼키며 방송에 나갔다.
헬리콥터를 타고 떠났던 시진이 일주일 만에 돌아왔지만, 그와 모연이 평범한 데이트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군인인 시진은 시도 때도 없이 내려오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부대에 복귀해야 했다. 함께 영화를 보다가도 연락이 오면 달려나가야 하는 것이 시진의 삶이였다.
결국 모연은 폭발했다. 그는 시진에게 "총상을 입었다는 건 총을 맞았다는 거고 그럼 총을 쏘기도 한다는 거네요? 그러니까 누군가를 죽이거나 본인이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일을 한다는 거네요, 유시진 씨는. 나쁜 사람들 하고만 싸우나요? 나는 매일 같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고 수술실에서 12시간도 넘게 보내요. 그런데 유시진 씨의 싸움은 죽음을 통해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는 거네요"라고 군인인 그의 직업이 가진 맹점을 비난했다.
이에 시진은 "나는 군인입니다. 군인은 명령으로 움직입니다. 때로는 내가 선이라고 믿는 신념이 누군가에게 다른 의미라 해도 전 최선을 다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합니다"라며 "그동안 전 세 명의 전우를 작전 중에 잃었습니다. 그들과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고, 나와 내 가족, 강 선생과 강 선생 가족 그 가족의 소중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두 사람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견해차가 있었고 모연은 "전 의사다. 생명은 존엄하고 그 이상을 넘어선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미안하지만, 내가 기대한 만남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시진을 떠났다. 시진 역시 "이해한다"며 "즐거웠다. 잘가라"고 냉정하게 모연을 떠나 보냈다.
그렇게 8개월이 흐른 후, 시진은 우르크에 파병을 가 근무하고 있었다. 그 사이 모연은 동기 대신 나간 TV 프로그램이 전화위복이 돼 병원의 간판 스타가 됐다. 이를 기반으로 특진병동에 발령이 나고 교수까지 됐지만 이내 발목을 잡는 일이 생겼다. 병원 이사장 석원(태인호 분)이 무턱대고 성적인 관계를 요구했기 때문. 그런 석원을 때리고 나온 모연은 다음날 우르크 봉사단장으로 임명돼 파견을 가게 됐다.
결국 두 사람은 재회했다. 끝날 줄 알았던 인연은 다시 이어졌고 시진은 모연과의 재회에 대해 "지나가는 인연은 아니었나 보다. 지나가는 중에 잠깐 부딪히나 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선글라스를 낀 시진은 자신을 알아 본 모연의 곁을 태연히 지나갔다.
'태양의 후예'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듣는 이들을 간지럽히는 문어체의 오글거리는 대사다. 하지만 이는 곧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재치 넘치고 유쾌한 데다 남녀 사이에선 설렘을 주기까지 하는 수려한 대사가 두 '꽃미녀', '꽃미남' 배우들의 입을 통해 전달되며 생기를 얻었다. 그 뿐인가? 대화의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면, 기가 막히게 현실적이고 말이 된다. 어투에 민망함이 있을 뿐이지 내용 그 자체는 듣는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게 할만큼 설득력이 있다.
김은숙 작가가 쓴 대사의 맛은 캐릭터의 개성으로도 연결되고 결국 드라마 전체를 지배하는 어떤 분위기를 형성한다. '태양의 후예'는 그 점이 오롯이 살아있어 김은숙 작가 드라마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과연 초반의 이 성공적인 느낌이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태양의 후예'는 낯선 땅 극한의 환경 속에서 사랑과 성공을 꿈꾸는 젊은 군인, 의사들의 삶을 담아내는 휴먼 멜로 드라마다. 매주 수, 목요일 오후 10시 방송된다. /eujenej@osen.co.kr
[사진] '태양의 후예'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