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 전부터 흔치 않은 열기를 자랑했던 드라마인 만큼, 보기 드문 광경으로 무너지고 있다. 한국 드라마 역사상 유례 없는 파행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2016년의 시작과 동시에 공개돼 단 2회만을 남겨 두고 있는 tvN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가 손 쓸 틈도 없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배우들의 호연은 물론 원작 웹툰과의 높은 정확도가 보는 이들을 만족시킨 것도 잠시였다. 케이블TV 월화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치인트’였지만, 10회를 기점으로 시청자들의 원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원작의 분위기, 남자 주인공의 분량, 탄탄한 오리지널 에피소드. ‘치인트’에서 실종된 것은 이 세 가지였다.
인간 관계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과 감정의 부딪힘을 절묘하게 포착해 냈던 원작 웹툰의 분위기는 간데 없고 흔한 삼각관계만이 남았다. 이 과정에서 이상하게도 남자 주인공 유정(박해진 분)의 분량이 날이 갈수록 줄기 시작했다. 원작에서 따 오지 않은 에피소드들은 전체 내러티브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마치 옴니버스 드라마처럼 뚝뚝 끊겼다. 본래 줄거리가 무엇이었는지 되짚어 보고 싶어질 정도다.
이에 남자 주인공 유정 역의 박해진은 물론 원작자 순끼까지 들고 일어났다. 순끼는 지난 25일 블로그를 통해 장문의 글을 남기며 드라마 ‘치인트’ 제작진에 참아왔던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웹툰이 드라마로 제작되며 매체가 달라지는 만큼 원작과 전혀 다른 느낌의 작품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했다면서 군데군데 원작의 에피소드를 그대로 차용한 드라마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는 동안 제작진으로부터의 연락은 한 통도 없었으며 시나리오 공유를 요청하자 “드라마 대본의 철통 보안”을 이유로 들며 6회 이후로 전혀 대본을 보내 오지 않았다고도 증언했다.
또 원작과 다른 엔딩을 내 줄 것을 요청했다고도 밝혔다. 웹툰의 결말이 아직 나지 않은 상황에서 드라마를 통해 그것이 공개되서는 안 될 테니, 당연한 요구였다. 그러나 순끼에 따르면 제작진은 14회 촬영 직전 결말 내용과 연출을 원작과 동일하게 해도 되겠냐는 연락을 했다. 이에 순끼는 재촬영을 해 달라며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치인트’ 제작진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원작자와 대화를 한 후 입장을 발표하겠다”는 태도지만 우선은 시청자들에게 실망을 끼친 것에 사과하는 게 먼저다. 그 다음은 피해를 입은 배우들과 원작자에 대해 미안함을 표해야 할 터다. 게다가 아직 끝나려면 한참 남은 웹툰의 결말을 다음주면 종영할 드라마에 그대로 가져다 쓰려 했다니, 상도덕의 부재를 탓할 수밖에.
지난 7월, ‘치인트’의 한 관계자는 OSEN에 “김남희 작가가 원작자인 순끼 작가가 만나서 원작자가 생각하는 결말에 대해 공유했다”며 “원작웹툰과 드라마의 결말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여전히 미정이다. 최소한 원작을 훼손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김남희 작가가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었다. 그러나 제작진의 행동은 약 8개월 전과 정반대가 됐다. 어떤 조치라도 취해야 할 때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은 이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다. 이 ‘역대급’ 논란을 드라마의 파행으로 남기지 않으려면, 제작진이 나서야 할 것이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치인트’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