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판타지다. 과거와 무전을 주고받으며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설정. 그런데 ‘시그널’은 현실과 맞닿아있어 더욱 흥미로운 아이러니다. 90년대를 완벽에 가깝게 재연해낸 배경, 진짜 같은 배우들의 열연과 함께 실제를 모티브로한 사건을 에피소드로 가미해 시청자들의 입맛을 제대로 충족시키고 있다.
지난 26일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에서는 이재한(조진웅 분)의 수첩에 적힌 마지막 사건인 ‘인주시 여고생 사건’에 얽힌 에피소드가 시작됐다. 아직 본격적인 사건 해결이 진행되지 않았지만 이 건은 조진웅와 이제훈의 결정적인 연결고리인 것으로 보여 더욱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청자들의 더욱 흥미를 느끼는 지점은 이 사건이 2004년 발생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생 사건’과 닮아있기 때문. 경남 밀양 지방의 고교생 44명이 여중생 1명을 1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인데, 당시 가해자들이 지역 유지 집안의 자녀라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나 국민적인 공분을 산 바있다.
극적 장치를 위한 다른 부분들도 있지만, 현실적인 디테일이 인상적이다. 당시 밀양 사건의 가해자의 부모가 취재진에 “여자애들이 와서 꼬리치는데 거기에 안 넘어가는 남자에가 어디있느냐”고 말해 분노를 일으킨 바 있는데, 이 대사가 드라마 속에서도 그대로 등장한다. 가해자의 엄마가 경찰을 찾아 "여자가 작정하고 꼬리치는데 여기 안 넘어갈 남자들 있어? 내 아들이 무슨 죄가 있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분노를 일으키게 한 것.
당시 사건은 피해자 아버지가 피해자와 가족들 모르게 가해자 가족과 합의를 한 후 합의금 5000만원을 받고, 결국 사건에 연관된 가해자 44명 중 10명 기소, 20명 소년원 송치, 14명은 합의로 인한 공소권 상실로 사건이 끝나게 된다. 극 중에서는 사건이 어떻게 풀려나갈지, 주인공들은 이 사건과 어떤 연관 관계가 있을지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밀양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인주 여고생 사건’에서 시공을 초월한 무전이 시작된 이유가 담겨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앞서도 ‘시그널’은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면서 판타지의 비현실성을 타개해 나갔다. 첫 에피소드로 등장한 ‘김윤정양 유괴살인사건’은 2000년 발생한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살인사건’과 닮아있다. 여성이 유괴범이었다는 점과 이 때문에 진범을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다.
이후 등장한 ‘경기남부 연쇄살인사건’ 역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했으며, ‘대도사건’과 ‘한영대교 붕괴사건’은 ‘대도 조세형’, ‘성수대교 붕괴’와 닮아있다.
모든 사건이 현실과 같은 전개와 결말을 맞지는 않지만 오묘한 연관성이 있어 흥미를 유발하는 포인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미제 사건이 해결되고, 언터처블 할 것 같은 범인이 법의 처벌을 받는 등 사건들은 비교적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이 같은 요소들이 판타지스러운 설정에 거부감을 최소화하면서 ‘시그널’을 인기 드라마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joonamana@osen.co.kr
[사진] '시그널' 방송화면 캡처. '밀양 사건'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