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되면 배우 이상엽의 재발견이다.
이상엽은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극본 김은희, 연출 김원석)에서 홍원동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인 진우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9회부터 11회에 걸쳐 등장했던 이상엽은 지금까지의 바르고 젠틀한 이미지에서 탈피해 섬뜩하지만 연민이 느껴지는 살인마를 너무나 훌륭히 소화해내 호평을 얻었다.
이상엽이 연기한 진우는 어린 시절 우울증에 시달리던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해 살인마가 된 인물. 진우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따라, 혹은 얼마나 사건 속에 들어가 있느냐에 따라 그를 향한 입장차가 갈릴 수밖에 없는데 이상엽은 탁월한 연기력으로 그 중심을 잘 잡아줘 시청자들의 몰입을 도왔다.
사실 이번 홍원동 연쇄살인사건은 다른 사건에 비해 진범이 너무나 빨리 밝혀져 어찌 보면 피해자였던 차수현(김혜수 분)의 트라우마 극복에 초점이 맞춰질 수도 있었다. 화면 속에 등장하는 진우는 늘 무표정이었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그저 살인을 즐기는 비정상적인 인물로 보일 가능성도 높았다.
하지만 극은 예상과는 다르게 진범을 잡는 과정이 아닌 살인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과거 잔혹한 가정사 위주로 전개가 됐고, 이에 이상엽의 연기력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할 수 있었다. 피해자들을 이 지긋지긋하고 우울한 삶에서 구해줄 수 있는 방법이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진우는 결국 자신을 진심어린 마음으로 대해주던 유승연(서은아 분)에 흔들리고 말았다.
승연이 건넨 귤 하나가 만든 커다란 변화였다. 진우는 승연을 죽이고 말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살인을 할 수 없었고 결국 자살을 시도하려다 검거되고 말았다. 이 때 귤을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 집으로 뛰어들어와 고통스러움에 몸을 떠는 이상엽의 아동학대 트라우마 연기는 안방 시청자들까지 소름돋게 만들었다.
그리고 승연의 목을 조이며 흘렸던 눈물, 자살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한 뒤 충혈된 눈과 가쁘게 내뱉던 숨소리 등 이상엽은 진우가 느꼈을 극한의 감정을 절제되면서도 섬세한 연기력으로 표현해내 캐릭터에 설득력을 입혔다. 분명 연민을 느껴서는 안되는 살인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충격적인 범행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건 모두 이상엽의 탄탄한 연기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parkjy@osen.co.kr
[사진] '시그널'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