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유혹’으로 막장 드라마라는 표현을 세상에 알린 장본인인 김순옥 작가는 역시 ‘클래스’가 달랐다. 전작 ‘왔다 장보리’와 유사한 전개로 김 작가 역시 자가복제를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시작에 불과했다. 어린이 드라마의 유치한 악당보다 더 강도가 센 악역부터 착한 주인공이 짜증을 유발하는 요상한 전개까지 드라마는 기괴했고, 시청자들은 욕하면서도 시청했다.
지난 28일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내딸 금사월’은 ‘아내의 유혹’, ‘왔다 장보리’를 성공시킨 김순옥 작가의 작품다운 행보를 보였다. 극악무도한 악역인 강만후(손창민 분)와 오혜상(박세영 분)을 무너뜨리기 위한 신득예(전인화 분), 그리고 득예의 친딸인 금사월(백진희 분)의 고군분투가 51회 동안 펼쳐졌다.
지난 해 9월 5일 첫 방송된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동시간대 1위로 출발했다. 시청률 30%를 넘길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린 ‘내딸 금사월’은 막장 드라마가 그러하듯이 시청률은 높지만 완성도에서 결코 높은 점수를 받을 작품은 아니었다. 김 작가는 드라마 곳곳에 웃음 장치를 집어넣어 막장 전개를 상쇄시키려고 했지만 만후와 혜상은 살인과 협박은 물론이고 온갖 비위의 중심에 있었던 터라 소용이 없었다. 두 사람을 막으려는 득예의 복수가 통쾌하게 펼쳐지면 좋았으련만 드라마 호흡이 긴 까닭에 번번이 무산됐고 이때마다 악역들의 악행의 세기는 점점 세졌다.
초반 ‘왔다 장보리’와 유사한 전개로 자가복제 지적을 받았던 김 작가는 중반부터는 선한 주인공이 본의 아니게 복수를 방해하거나 악역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이야기로 공분을 샀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수록 사월이와 그의 연인이자 만후의 아들인 강찬빈(윤현민 분)은 욕을 먹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을 이룰 수 없어 안쓰러워야 하는 주인공들이 득예의 복수를 가로막는 인물이 되면서 시청자들에게 ‘암사월’, ‘암찬빈’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따라붙었다.
대신 득예와 함께 만후와 혜상이를 정의의 이름으로 괴롭히는 주오월(송하윤 분)과 주기황(안내상 분)의 인기가 높아졌다. 오월이는 혜상이의 방해 공작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았고 답답한 전개의 희망처럼 여겨지며 극중 비중이 몰라보게 커졌다. 드라마는 점점 ‘사월이 엄마 득예’, ‘내 친구 오월이’라는 시청자들의 비아냥이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득예와 오월이, 그리고 기황의 이야기로 중심이 쏠렸다. 그도 그럴 것이 시청자들은 답답한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을 괴롭히는 ‘미친 악역’보다는 막힌 속을 뻥 뚫어주는 ‘사이다 인물’들을 선호했다.
결과적으로 김 작가는 한복 명인을 둘러싼 경연으로 갈등을 만들었던 ‘왔다 장보리’와 전혀 다른 드라마를 만들었다. ‘왔다 장보리’에서 악역인 연민정(이유리 분)이 선한 주인공인 장보리(오연서 분)보다 인기를 끌었다면 ‘내딸 금사월’의 인기에는 분명히 김 작가의 의도했든 아니든 변주가 있었다. 건축 명인이 되기 위한 경쟁을 내세운 ‘내딸 금사월’은 선악으로 명쾌하게 갈리는 것보다 악을 처단하기 위해 선하진 않지만 정의 구현의 장치를 꺼내든 선과 악의 경계의 인물들이 극의 즐거움을 책임졌다. 바로 복수의 칼날을 꺼내든 주체적인 인물인 득예와 오월, 그리고 기황이다. ‘사이다 3인방’은 기존의 드라마 속 무턱대고 선한 인물들과 거리가 먼 선과 악의 모호한 선을 밟고 있었다.
극중 인물들의 용납할 수 없는 악행, 그리고 이런 악행을 웃기게 만드는 코믹 장치들은 흥미를 자극하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점점 극성이 세지는 막장 드라마, 그리고 그런 막장 전개로 쏠쏠한 재미를 보는 김 작가는 이번에도 안방극장에 흥행작을 하나 탄생시켰다.
‘내딸 금사월’이 끝난 빈자리는 이서진, 유이의 ‘결혼계약’이 채운다. ‘결혼계약’은 인생의 가치가 돈 뿐인 남자와 인생의 벼랑 끝에 선 여자가 극적인 관계로 만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밝고 경쾌하면서도 애절하게 그릴 정통 멜로 드라마로 다음 달 5일 오후 10시 시청자를 찾아간다. / jmpyo@osen.co.kr
[사진] MBC 제공, '내딸 금사월'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