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모르게 호감이 가는 사람. 배우 박효주를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다. 세련된 도시 여자 같은 느낌인데, 어쩐지 얄밉지 않다. 솔직한 태도와 사근사근 상냥한 말투가 옆에 있는 주변의 기운을 활기차게 만든다. 결혼 소식을 알리고 두 달 후, 박효주는 영화 한 편을 들고 관객들을 찾았다. 스릴러 영화 '섬, 사라진 사람들'이 그것. 그는 극중 진실을 쫓는 기자 역을 맡았다. 왜 하필 무거운 소재의 스릴러일까?
"이 영화를 통해서 제가 얻은 시선은 그거에요. 내가 보고 있는 게 정확한 진실일까? 지나친 마녀 사냥에 치우쳐서 사건을 왜곡하며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염전노예 사건도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나왔지만, 단순히 '불쌍해', '나빠'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선악을 나누는 게 아니라 인권이 뭔지, 구체적인 것까지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너무 편 나누기에 집중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 공감이 있어서 이번 역할을 연기한 것 같아요."
'섬, 사라진 사람들'은 2014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염전노예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사건을 제보 받은 젊은 두 명의 기자가 염전을 생활터전으로 잡한 섬마을에 찾아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박효주는 주인공 이혜리 기자로 분해 사건의 중심을 이끌어 간다.
박효주는 극 중 사회부 기자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많은 리서치를 했다. 그간 작품들에서 총 일곱 번의 형사 역할을 했던, '센' 역할에 익숙한 그지만 여기자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영화 '데이비드 게일' 속 케이트 윈슬렛의 모습을 보고 기자 역을 해볼 날을 기다려 왔던 것도 한몫했다.
"일하는 사람(기자들)의 모습을 많이 참고하고 봐야했어요. 레퍼런스로는 영화를 많이 봤고, 시사 프로그램도 많이 보고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나 시선, 뒷모습, 손 동작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유심히 봤어요. 질문하는 사람의 목소리에도 집중하고요. 어떤 기자 분들은 인간적으로 얘기를 하는 분도 있고, 정말 냉정하게 말을 하는 분도 있고요. 사람마다 다양한데 그런 부분을 찾아가는 재미가 매력 있었어요."
영화는 형식적으로도 특별한 부분을 담고 있다. 극 중 이해리 기자가 직접 카메라를 들어 취재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배우들이 이 부분에 들어가는 장면을 직접 촬영한 것. 박효주는 "새로운 작업에 신이 났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소재보다 형식에 끌렸어요. 시나리오 맨 뒤에 감독님의 메모가 있었죠. '메이킹 방식의 촬영을 할 거다. 배우들이 연기하기 쉽지 않겠죠'라고요. '쉽지 않겠죠'라는 말이 너무 매력있게 다가왔어요. 너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요. 제가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런 작업을 해볼 수 있다는 게 매력이 있었어요."
박효주는 사실, '섬, 사라진 사람들'을 찍기 전까지 조금 지루했던 참이였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데뷔 17년차. 여배우로서 인지도를 얻고, 자신만의 캐릭터를 잡았지만, 그만큼 새로움에 대한 갈망도 더 커졌기 때문이다.
"열 시간 넘게 한 장면 때문에 계속 움직여야 했어요. 그런 새로움이 가득했어요. 배우가 만들어진 조명 안에, 세팅된 카메라 가운데 무대처럼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안 보여요. 그런데 이번 작업은 다같이 움직여야 했어요. 조명과 카메라가 같이 움직이고 했으니 스태프와 더 친해질 수 있었죠. 그래서 우리가 같이 만든다는 생각이 짙었던 것 같아요. 힘든 것보다 재밌었어요. 아주 많이요."
그간 박효주는 여러 번 형사 역할을 맡았다. 분명, 여성스러운 느낌이 가득한 배우인데도 주로 맡았던 캐릭터들은 센 느낌이 다분한 여성들이다. 박효주는 이 모든 것이 영화 '추격자' 속 여형사 캐릭터 때문이라고 했다.
"제가 계획하진 않았어요.계획한 대로 살아지지도 않지만.(웃음) 첫 작품 '추격자' 속 형사의 이미지가 커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저에게 가깝게 갈 수 있는 장르죠. 외적인 이미지라던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어렸을 때 더더욱 그 부분이 반영돼서 캐스팅이 되니까요. 그래서 요즘엔 더 로맨스에 탐이 나요."
요즘의 박효주에게 로맨스 작품이 더 잘 어울릴 수 있는 것은 그가 최근 결혼을 한 새댁이기 때문이다. 달달한 신혼의 느낌을 작품을 통해서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지난해 12월 결혼한 박효주는 "10년 전부터 친구였던 남편과 친구처럼 잘 놀고 있다"며 신혼생활의 행복을 말했다.
"늘 많이 응원해주고, 자기가 저의 최고의 팬이라고 자청을 해주고요. 되게 많이 힘이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결혼 후 처음 찍게 되는 이 다음 작품이 전 제일 기대되요. 큰 일을 치루고 나서 저에게 시점의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새로운 시간들인 것 같아요."
수십년간 '롱런'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단순하다. 이 일을 좋아할 것.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연기자의 길을 달려온 박효주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제가 이 일을 계속 좋아하는 거 같아요. 좋아하는 게 확실해야 하는 것 같아요. 연기하는 자체를 좋아해야 오래 버틸 수 있어요. 다른 걸 좋아하면 못 버텨요. 다른 건 변화가 많으니까요. 제가 연기하는 것 자체를 굉장히 좋아하지, 생각하면 주변에 할 것도 많고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잘 버텨야죠.(웃음)" /eujenej@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