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영화 ‘널 기다리며’에서는 이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바라봤지만, 지은 만큼 범인의 죄를 물을 수 없었던 무력한 상황에서 소녀는 스스로 괴물을 처단하기 위해 나선다. 그리고 자신도 괴물이 된다. 소녀가 앞장서니 스릴러도 감성을 입는다.
2일 오후 서울 성동구 행당동 왕십리 CGV에서 베일을 벗은 ‘널 기다리며’는 아빠를 죽인 범인이 세상 밖으로 나온 그 날, 유사 패턴의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15년간 그를 기다려온 소녀와 형사 그리고 살인범의 7일간 추적을 그린 스릴러 작품이다.
영화에서 연쇄살인사건은 총 7건이 발생한다. 그 중 한 건만 죄가 입증돼 살인범인 기범(김성오 분)에게 15년형이 내려진다. 그나마도 제보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수라장이 된 법정에서 유일하게 시간이 멈춘 듯 기범을 바라보던 피해자의 딸 희주(심은경 분)는 기범을 처단하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15년을 보낸다.
15년이 흐른 후 희주는 순수함으로 주변을 밝게 하는 소녀로 성장한다. 그러나 내면엔 기범에 대한 증오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이 숙제로 자리잡아 있다. 기범이 세상 밖으로 나온 날부터 7일간 남몰래 그를 잡기 위한 추적을 시작한다.
이 영화 속 심은경이 연기한 희주는 맑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섬뜩함이 느껴지는 내면을 표현해야 하는 캐릭터다. 이런 이중성에 심은경도 어려움을 느꼈던 바. 언론시사가 끝난 뒤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희주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보이느냐 일상적으로 물 흘러가듯 연기하냐 사이에서 고민했다”고 밝혔다. 캐릭터를 통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는 배우의 부담감이 느껴졌다.
배우의 걱정은 기우였던 듯싶다. 심은경은 이중적인 희주의 모습을 물 흐르는 듯한 연기로 표현했다. 이를 통해 괴물과 싸우다 스스로 괴물이 돼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관객들에게 설득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녀가 살인범과 싸우는 스릴러의 주인공이 됐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준다. 이와 관련해 연출을 맡은 모홍진 감독에 따르면, ‘널 기다리며’ 주인공은 원래 시나리오 상 남자로 설정돼 있었다. 그러나 심은경과 첫만남 이후 성별이 여성으로 바꿨다고. 이처럼 ‘널 기다리며’에서 소녀를 앞장세운 건 신의 한수가 되고, ‘감성 스릴러’ 장르를 구축할 전망이다.
‘널 기다리며’는 오는 10일 개봉해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 besodam@osen.co.kr
[사진] '널 기다리며'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