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작가가 KBS 2TV ‘태양의 후예’ 유시진을 통해 ‘백마 탄 왕자’라는 클리셰를 스스로 깨부쉈다.
그간 김은숙 작가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백마 탄 왕자’를 연상케 하는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부터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과 ‘시크릿 가든’의 현빈, ‘상속자들’의 이민호까지 모두 그러했다.
신데렐라까진 아니더라도 지극히 평범한 여주인공 앞에 나타난 까칠한 재벌 2세. 대궐 같은 집은 물론이고 값비싼 정장에 스포츠카는 기본 옵션이다. 또한 재벌 2세는 자신을 막 대한 여자는 처음이라는 식으로 여주인공에게 빠지기 시작해 “나 너 좋아하냐”라며 박력 넘치게 고백한다.
이제는 드라마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클리셰가 돼버린 ‘백마 탄 왕자’ 공식은 사실 김은숙 작가가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필력과 공들인 설정을 통해 그럴 듯한 가상 세계로 만들어내는 그의 능력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아왔다.
또한 앞서 언급한 “나 너 좋아하냐”와 같이 문법적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지만, 뇌리에는 확실히 각인되는 대사들은 그의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덕분에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라 하면 “애기야 가자”, “길라임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나?”와 같은 특정 명대사들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 공식을 깨트린 드라마가 나타났다. 다름 아닌 김은숙 작가의 신작 ‘태양의 후예’다.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이 드라마는 특히 유시진 역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엄청나다. 물론 전역 후 진짜 사나이가 되어 돌아온 송중기의 활약도 크지만, 김은숙 작가의 전작들 속 남주인공과 확연한 차이를 자랑하는 유시진 캐릭터의 매력에 푹 빠진 것.
그간 김은숙 작가가 그리는 남자 캐릭터가 말 그대로 동화 속 주인공 같은 느낌이었다면, 유시진은 현실 속에 있다고 착각할 만큼 담백하고 솔직한 인물이다. “의사면 남친 없겠네요? 바빠서”, “난 태어나서 지금이 제일 설레요. 미인이랑 같이 있는데 불 꺼지기 직전”와 같은 거침없는 대사들은 변함없지만, 여주인공에게 집착하거나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여주인공이 위기에 처하면 누구보다 먼저 나선다. 상관의 명령에 불복하고 적에게 총을 겨누거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기도 한다. 심지어 휴가를 반납하고 언제 지진이 재발할지 모르는 우르크로 향하는 유시진의 모습은 어쩌면 그 어떤 캐릭터보다 비현설적이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백마 탄 왕자’가 지겨워질 때쯤 유시진이라는 캐릭터로 새로운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김은숙 작가. 3회 만에 20%, 6회 만에 30% 돌파를 앞두고 있는 ‘태양의 후예’ 인기의 핵심, 군인 유시진 캐릭터는 어쩌면 백마 탄 왕자를 잇는 새로운 유행이 되지 않을까. / jsy901104@osen.co.kr
[사진] K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