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논란과 추락하는 시청률의 늪에서 ‘나를 돌아봐’를 확실히 견인해낸 것은 단연 이경규와 박명수 커플이다. ‘버럭’ 캐릭터의 원조이자 30년 가까이 방송을 해 온 개그계의 대부 이경규가 까마득한 후배 박명수의 매니저로 변신한다는 설정만으로도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주로 이경규가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박명수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장면들이 연출됐다.
이러한 모습이 몇 주간 반복되며 조금 피로해진다 싶을 때쯤, 이번에는 이경규의 모습을 통해 박명수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마련됐다. 지난 11일 방송된 KBS 2TV ‘나를 돌아봐’에서는 ‘이실장님’ 이경규의 집을 방문한 박명수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박명수는 이경규의 딸 이예림과 대화하고, 이경규의 집에 마련된 그만의 공간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듯했다.
이날 이경규가 마련한 저녁 식탁에는 이예림과 박명수의 대화가 대부분이었다. 이예림이 “민서(박명수의 딸)랑 친하세요?”라고 물으면 박명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빠가 이경규면 어떤가. 우리 딸이 ‘아빠가 박명수’라고 하면 싫어할까 걱정된다”고 되묻는 식이다. 그러면 이예림은 “아빠가 이경규인 것은 좋다. 그러나 ‘어쩐지 똑같이 생겼더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며 너스레를 떤다. 지금은 아홉살인 박명수의 딸도, 10년이면 이경규의 딸만큼 자라 있을 터다. 박명수는 이 자리에서 먼훗날 민서와 대화를 나누는 미래의 자신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몹시 바빴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서툴었던 이경규도 박명수에게는 모종의 ‘타산지석’이 된 것 같았다. 아직 서먹하지만 서로에 대한 애틋함으로 마음을 열어가고 있는 이경규·이예림 부녀의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안타까웠던지, “형님처럼 되지 않게 가족과 소통도 하고 노력해야겠다”며 농담을 건넨 박명수였다. 어떤 삶에도 정답은 없지만, 박명수가 생각하는 이상적 가족의 형태는 분명했던 모양이다.
이경규의 가족처럼 개인 영역을 뚜렷이 구분한다고 해서 서로를 덜 사랑하겠는가. “민서가 결혼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박명수에게 이경규가 맞장구를 쳤다. 딸을 앞에 두고 하기 민망했을 말을 그 무뚝뚝한 이경규가 해냈다. 박명수가 촉매제가 돼 이경규와 이예림 부녀까지 간접적으로 속내를 터 놓는 계기를 만든 순간이었다. 이경규가 보여 준 박명수의 ‘미래일기’ 속 한 페이지는 이처럼 훈훈한 광경으로 채워져 있을 것이라 믿는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나를 돌아봐’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