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주목받은 여배우를 꼽자면 단연 브리 라슨이다. 영화 ‘룸’은 그에게 제73회 골든글로브 드라마부문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소원일 오스카 트로피까지 안겼다. 브리 라슨은 17살에 납치돼 7년을 가로·세로 3.5m의 ‘룸’에 갇혀 지내며 처음 겪는 다양한 감정과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는 조이로 분해 호평받았다.
브리 라슨 말고도 극장가에 또 다른 조이가 있었으니, 전설적인 여성 CEO 조이 망가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조이’의 제니퍼 로렌스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브리 라슨과 이보다 먼저 할리우드의 사랑을 독차지한 제니퍼 로렌스, 이 두 젊은 여배우가 각각 ‘룸’과 ‘조이’에서 동명의 캐릭터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세계 굴지의 영화 시상식을 섭렵한 두 조이의 이야기를 살펴 봤다.
# ‘룸’의 조이, 브리 라슨
‘룸’은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2014년작 ‘보이후드’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먼저 ‘보이후드’를 통해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된 엘라 콜트레인의 꾸밈 없는 모습과 ‘룸’을 세상의 전부로 알던 다섯 살 꼬마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소름 돋는 연기는 각 영화에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기는 요소였다. 더불어 이 두 영화의 주요 내러티브가 아이들이 자라나는 광경을 관찰한다는 점도 닮았다. 극 중 엄마 캐릭터를 맡은 브리 라슨과 페트리샤 아퀘트가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등의 주요 시상식을 휩쓸었다는 점 역시 같다.
‘보이후드’는 평범한 아이 메이슨(엘라 콜트레인 분)의 삶을 시간 순으로 비추는 보편적 성장 이야기로 공감을 이끌어냈다. 반면 ‘룸’은 다소 그로테스크한 성장담이라 봐도 좋을 터다. 좁은 방, TV, 책 등 사각의 세계를 진짜로 알고 자란 잭(제이콥 트렘블레이 분)의 몸에 처음으로 창문을 거치지 않은 햇볕이 쏟아질 때를 절묘하게 포착하며 이를 한 인간이 내딛은 진보의 순간으로 치환한다.
기실 ‘룸’에서는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모습이 더욱 기억에 남지만, 이를 받쳐 준 것이 브리 라슨의 섬세한 연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상식선에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잭의 어린 엄마 조이(브리 라슨 분)는 스스로 아들과 ‘룸’의 바깥을 잇는 매개가 되려 한다. 그러나 그 역시 세상 경험이라곤 17년이 전부였던지라 더 이상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그는 마지막 힘을 짜내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한 장면으로 아들에게 자유를 선물하려 한다.
‘룸’의 조이가 돋보였던 것은 아이를 낳고 보니 돌연 발생한 모성애가 절절 끓었기 때문은 아니다. 7년의 감금 기간 동안 좁은 방을 온 세상으로 만든 생존 의지는 물론이고, 잭을 낳을 당시 고작 열아홉 어린애였던 자신과 엄마로서의 자신이 벌이는 내면의 갈등이 조이라는 한 인물 안에 오롯이 담겼다. 후환이 두렵더라도 잭을 ‘룸’ 밖으로 내보내려는 조이의 모습에서는 모성애보다 전우애가 먼저 느껴진다. 브리 라슨은 이 같이 쉽게 겪을 수 없는 경험과 그로부터 나오는 감정의 결을 섬세하고 입체적으로 살렸다. 거대한 혼돈과 이에 맞서는 인간의 모습을 다각도로 비추고 있는 것 같기도 했던 연기였다. ‘룸’의 조이, 브리라슨이 빛났던 이유다.
# ‘조이’의 조이, 제니퍼 로렌스
제니퍼 로렌스는 할리우드에서 ‘여배우 원톱’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그냥 ‘원톱’이 아니라, ‘헝거게임’ 시리즈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를 세 편이나 지속시킨 배우다. 대중이건 평단이건, 제니퍼 로렌스가 커리어의 정점을 매번 갱신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스크린 안이든 밖이든 한결같이 소탈하고 당찬 제니퍼 로렌스의 이미지도 그의 뜨거운 인기에 한몫했다.
데뷔 10년 만에 미국을 대표하는 20대 여배우가 된 그의 선택은 여성 CEO 조이 망가노를 다룬 영화 ‘조이’였다. 설명만 들어도 조이의 성공 신화가 눈 앞에 그려지는 듯하지만, 이 영화는 조이의 고생담을 보여주는 데 그친다. 평생 조이를 괴롭혀 온 가족들의 몰염치한 일화가 자세하고도 많이 들어가버린 탓에 그녀의 짜릿한 성공 이야기를 빛나게 해 줄 본래의 역할을 넘어서 버렸다.
제니퍼 로렌스는 조이라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두각을 드러낸 한 명의 커리어우먼’의 전형적 이미지를 완벽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고난을 회피하지 않고 모든 짐을 자신의 어깨에 얹는 책임감과 “그래도 내가 하겠다”고 나서는 진취적 눈빛은 그간 제니퍼 로렌스가 맡아온 역할 속에 조금씩 묻어있는 모습들이어서 익숙하게 다가온다. 예뻐 보이려 애쓰지 않는 분투마저도 그랬다. 결과적으로 ‘조이’의 조이로서 제니퍼 로렌스가 보여 준 연기가 안정적이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이제는 조금 물린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러나 단 한 줌의 로맨스 없이도 장편 영화를 이끌 수 있는 카리스마는 아직까지 제니퍼 로렌스의 전유물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20대 배우 가운데서는 가장 핫하다는 남자 스타들도 능가하는 존재감이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이어 ‘아메리칸 허슬’, ‘세레나’에서까지 호흡을 맞췄던 브래들리 쿠퍼와는 손 한 번 묘하게 스친 적 없지만 그대로 멋진 관계였던 것만 봐도, 제니퍼 로렌스는 역시 제니퍼 로렌스였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룸’·‘조이’ 포스터,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