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드라마가 여태 있었던가. 16부작을 촘촘하게 메운 퀄리티는 물론, 주인공 3인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도 마지막 5분을 짐작하기 힘들었다. 마지막 엔딩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든 tvN 드라마 '시그널'은 결국 세 사람의 만남은 그려주지도 않은 채, 생사만 확인시키고 종영됐다.
김혜수, 조진웅, 이제훈의 '시그널'(극본 김은희, 연출 김원석) 주연진이 확정된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현재의 형사들과 과거의 형사가 낡은 무전기로 교감을 나누며 장기미제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내용은 영화 '프리퀀시'를 떠올리게 했지만, '싸인' '유령' '쓰리데이즈'를 집필한 김은희 작가와 '미생' '성균관 스캔들'을 연출한 김원석 PD의 만남으로 우려는 불식됐다.
세 주연배우는 모두 tvN 드라마의 첫 출연이었다. 또한 여느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단 한 번도 만들어지지 않은 조합이기도 했다. 김원석 PD는 이들의 캐스팅을 두고 "세 분 모두 대본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배우였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했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믿기 힘들 정도로 기쁜 한편 엄청난 책임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이는 100% 만족스러운 결과물로 안방극장에 전달됐다.
시작만 해도 이정도의 반응을 기대 못했다. 장르물이 자아내는 한계가 그러했고, 전작 '응답하라 1988'이 너무 큰 호응을 받아 상대적으로 저조한 반응을 얻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기 때문. 물론 지금에와서 떠올리면 그야말로 괜한 걱정이었다. '응팔'의 공석은 방송 첫 회로 가득 채웠다. 숨막히는 전개, 짜릿한 반전, 시계를 볼 겨를이 없이 흘러간 전개는 '영화 같은 드라마'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첫 번째 사건은 김윤정 납치 사건이었다. 15년전 미궁에 빠졌던 유괴사건의 유력 용의자의 백골이 2000녀 진양경찰서 형사 이재한(조진웅)과의 무전을 통해서 박해영(이제훈)이 발견하면서 장기미제사건팀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또한 처음으로 주고 받은 이날의 무전과 장면장면은 3월 12일 방송된 '시그널' 최종회에서 고스란히 반복됐다. 물론 1회와 16회 사이 전개된 14편의 회차가 이해되지 않았던 장면들의 이해의 여백을 모두 빼곡하게 채웠다.
무전의 엇갈린 시간과 조금씩 바뀌며 뒤틀린 현재, 그리고 1회에 죽었던 이재한, 6회에 죽었던 차수현(김혜수), 16회에 죽었던 박해영은 모두 무전을 통해 과거가 바뀌면서 부활했다. 무전을 주고 받았던 이들은 바뀐 현재에서도 이전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새롭게 정의를 위해 힘을 모을 것임을 시사하며 끝맺었다.
그저 막연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식의 해피엔딩도 아니었고, 자극적인 기억을 남기기 위한 극도의 새드엔딩도 아니었다. 특히 이 모든 커다란 스토리의 톱니바퀴를 구상하고, 첫회와 마지막회를 절묘하게 맞물리게 만든 '시그널'은 그야말로 역대급 드라마, 인생 드라마라는 수식어가 전혀 무색하지 않았다.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는, 완전한 기우였다. 오히려 이재한이 병실에서 뒤를 돌아보는 화면, 기존 이재한을 담아내던 70미리 아니모픽 기법이 아닌 현재의 차수현과 박해영과 동일한 화면으로 부활한 그의 모습은 '시그널'을 완벽하게 매듭지은 '화룡점정' 그 자체였다. 이제는 시즌2로 날아오를 때다. / gato@osen.co.kr
[사진] '시그널' 캡처, tvN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