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진웅이 '시그널'을 만난 건 운명이었던걸까. 만약 그가 공감이 안 됐다는 첫 마음으로 이 드라마에 출연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쯤되니 김원석 PD의 절실한 설득이 참으로 고맙다.
조진웅은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극본 김은희, 연출 김원석)에서 과거의 형사 이재한을 연기했다. 이재한은 정의로 똘똘 뭉친 인물로, 투박하지만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후배인 차수현(김혜수 분)에게 툴툴거리면서도 진심으로 조언하고 배려를 하곤 했다. 이에 차수현이 반하는 건 당연한 일. 십수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이재한만을 생각하고 기다리는 차수현의 애틋한 마음이 이해가 되는 건 모두 조진웅의 탄탄한 연기력이 기반이 된 캐릭터 이재한이 인간적으로 너무나 멋지기 때문이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절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정의로움은 이재한의 최대 매력 포인트로 손꼽힌다. 수사를 할 때의 저돌적인 모습은 급기야 섹시하다는 반응까지 얻었고, 이에 설렌다는 시청자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여느 형사와 답게 후줄근한 옷차림에 늘 머리에 까치집을 만들곤 했지만, 그 모습마저도 멋있어 보이는 건 그만큼 이재한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힘이 대단하다는 의미가 된다.
이재한이 더 매력적인 건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땀만 삐질삐질 흘리는 순진하고 순수한 남자라는 점이다. 또한 강력반 형사들은 다 아는 차수현의 마음을 본인 혼자 모를 정도로 둔하다. 그럼에도 답답하다고 느끼지 않는 이유는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케미스트리가 너무나 귀여워 자연스레 광대 승천을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면서 은연중에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모습은 시청자들이 '시그널'을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줬다. 이 덕분에 장르물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러브라인을 응원하는 목소리는 회를 거듭할수록 높아졌다. 15년만에 이재한과 무전으로나마 대화를 하게 된 차수현의 눈물에 같이 울었다는 반응 역시 줄을 이었다. 분명 보기만 해도 눈호강이 되는 꽃미남은 아닌데 보면 볼수록 반하게 되는 조진웅의 진가가 '시그널'을 통해 제대로 폭발한 것. 결국 배우는 연기를 잘했을 때 빛이 날 정도로 멋지다는 것을 알게 해준 셈이다.
앞서 조진웅은 드라마 시작 전 네이버 V앱을 통해 진행된 스페셜 토크 시간에 "시나리오를 사실 못 봤는데, 무전이 과거에서 현재로 온다는 것이 공감이 안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잘못했으면 조진웅이 '시그널'에 출연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던 것. 하지만 김원석 PD는 조진웅을 끌까지 절실하게 설득했고, 조진웅은 김은희 작가가 쓴 대사 때문에 생각을 바꾸게 됐다. 바로 이재한이 박해영에게 했던 "20년 후인데 지금과 다르게 거기는 바뀌어 있나요?"라는 대사였다. 이 대사를 들은 조진웅은 여전히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참담한 현실 속에서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출연을 결심하게 됐고, 이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조진웅이 만난 인생작 '시그널', '시그널'이 만난 최고의 배우 조진웅. 그야말로 운명이자 필연이다. /parkj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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