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동안 날아다니던 배우 김명민이 ‘육룡이 나르샤’에서 퇴장했다. 역사가 스포일러(예비 시청자에게 내용을 미리 알림)라는 말이 있듯 모두가 알고 있던 죽음인데도 불구하고 보내기가 아쉽다. 그건 전율의 ‘고려제라블’부터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정도전으로 살았던 김명민의 연기를 다시 볼 수 없음 때문이다.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신경수)는 온갖 부정부패가 난무하던 고려 말부터 시작해 새 나라 조선을 건국하기까지 이방원(유아인 분)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방원의 성장 과정을 통해 그가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그가 가치관을 형성하고 또 변해가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영향을 끼친 인물은 정도전(김명민 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원을 다루면서 정도전도 그에 비등하게 설정한 것.
지금까지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의 활약은 대단했다. 엿을 들고 10분 간 노래 부르고 울부짖던 ‘고려제라블’부터 여러 반전의 계책을 세우며 활약해왔던 것. 이에 이방원은 그를 유일한 ‘잔트가르’(최고의 사내)로 인정했고, 스승으로 모시게 됐다. 정도전이 없었다면 조선을 건국하기 힘들었을 것은 물론, 애초에 새 나라를 세우겠다는 꿈조차 꾸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왕권을 둘러싸고 여러 쟁점에 부딪치면서 정도전과 이방원은 갈라졌다. 야망이 컸던 이방원은 왕권을 축소화시키려는 정도전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고, 결국 칼자루를 겨누게 됐다.
마지막 순간까지 김명민 표 정도전은 시청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죽음을 맞는 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의 레전드 장면을 경신한 것. 성균관에 숨어갔던 것도 자신이 죽어 이방원 쪽으로 기세가 기울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고, 죽음을 직감하고 나서도 의연하게 그와 산책을 제안했다.
이를 연기한 김명민은 눈빛으로 그 모든 심경을 다 전했다. 자신을 향해 큰 절을 올리는 남은(진선규 분)을 향해 그 어느 때보다 인간적인 웃음을 지어보였으며, 죽기 직전에는 한숨처럼 고단함을 표현했다. 또한 정몽주(김의성 분)를 향한 그리움의 감정도 드러냈다. 홀로 이방원의 무리 앞에 선 정도전은 김명민이었기에 더욱 처연하면서도 꿋꿋해보였다.
이처럼 6개월 동안 시청자들에게 살아 숨 쉬는 정도전을 선물한 김명민. 오히려 정도전은 김명민이라는 배우로 살아난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라는 말이 과언은 아닌 듯싶다. / besodam@osen.co.kr
[사진] '육룡이 나르샤'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