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작스럽게 다가온 죽음 앞에서도 정도전(김명민 분)은 참으로 담대했다. "고단하구나, 방원아"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감정과 세월을 다 담아냈는데, 그마저도 너무나 평온했다. 그리고 이방원(유아인 분) 역시 이런 스승을 떠나보내며 그 어느 때보다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14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신경수) 47회에서는 그간 시청자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던 이방원의 왕자의 난이 드디어 공개됐다. 한 때 뜻을 같이 하며 손을 맞잡았던 정도전과 이방원의 끝에는 피가 난무했다. 많은 이들이 이방원의 지시 아래 목숨을 잃었고, 이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태우는 이방원의 표정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이런 이방원도 정도전 앞에서만큼은 달랐다. 이방원은 정도전이 있는 성균관을 모두 포위했다. 도망을 가더라도 붙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정도전은 '조용히 좀 해라, 곧 나간다'라는 서찰을 이방원에게 보낸 뒤 제 발로 걸어나왔다. 정도전은 죽음이 눈 앞에 다가온 순간에도 이방원이 고개숙일 수밖에 없는 진정한 '잔트가르'였다.
김명민과 유아인은 시청자들이 끝까지 정도전과 이방원에 몰입될 수 있도록 절제된 연기를 선보였다. 숨 소리 하나까지도 계산된 듯, 숨막히는 긴장감 속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두 사람의 연기는 종영을 앞두고 하나씩 끝을 맺어가고 있는 '육룡이 나르샤'를 더욱 탄탄하게 받쳐줬다. 시작은 같았지만 어쩔 수 없이 등을 돌리게 된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 불가능한 애증이 뒤엉켜 있었고, 이는 두 사람의 마지막 산책에서 진하게 묻어 나왔다.
김명민은 "고단하구나, 방원아"라는 말 한 마디에 평생 힘겹게 달려왔던 정도전의 소회를 다 담아내는 동시에 이방원을 향한 스승의 마음까지 표현해내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만들었다. 눈빛, 표정, 목소리까지. 그가 왜 정도전이어야 했는지를 너무나 명확히 보여준 명장면이었다.
그리고 유아인은 정도전을 죽이기 직전까지 한없이 불안했을 이방원의 마음을 떨리는 표정과 눈빛 속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자신의 칼에 찔려 숨을 거둔 스승을 바라보며 한숨처럼 내뱉었던 "아까 그 기록에서 쥐새끼처럼 도망갔다는 건 뺍시다"라는 말부터 지난 날 정도전과의 일들을 떠올리다 허망한 얼굴로 정도전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불 속에 넣는 모습까지, 유아인은 끝까지 시청자들이 이방원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게 몰입도 높은 연기를 보여줬다.
47회라는 긴 시간을 이어온 김명민과 유아인의 전쟁 같았던 연기 호흡은 이제 끝이 났다. 한 순간도 빠짐없이 늘 치열하게, 또 열정적으로 연기했던 김명민과 유아인이기에 이 마지막을 지켜본 시청자들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클 수밖에 없다. /parkjy@osen.co.kr
[사진] '육룡이 나르샤'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