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차 배우 진구에게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다부진 몸, 입 대신 말을 하는 강렬한 눈빛은 ‘남자다운’ 배역에 특화된 외모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게다가 묵직하게 가라앉은 음성 또한 보는 이들의 귓전을 파고 들었었다. 말랑말랑하고 곱상한 남자 배우들이 여심을 사로잡는 사이에도, 진구는 뚝심 있게 자신만의 이미지를 고수해왔다.
그래서인지, 진구는 출중한 연기력에 비해 주목받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화 ‘비열한 거리’ 속 조직폭력배 종수로 분했을 때는 보스를 향한 무한한 충성심과 생존을 위한 냉혹한 배신까지 양 극단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연기하며 관객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그런가하면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는 극의 긴장감을 책임지는 진태 역할을 맡아 섹시함까지 풍기기 시작했다. 푹 눌러 쓴 모자 사이로 빛나는 진태의 눈은 먹잇감을 앞에 둔 맹수의 것과도 비슷했다.
영화 ‘26년’의 진배는 종수나 진태보다 따뜻한 인물이면서, 좀 더 무식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의와 세상의 정의가 다르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불의에 온몸으로 부딪혔던 캐릭터다. 영화의 만듦새와 별개로, 극 중 진배의 격렬하면서도 가련한 몸짓은 촌스러웠을지언정 순수했다.
이쯤되면 진구가 호평받았던 캐릭터의 공통점이 보인다. 그가 좋은 반응을 얻었던 역할에서는 로맨스를 발견하기 힘들었다. 지난 2013년 방영된 KBS 2TV ‘광고천재 이태백’에서 박하선과의 러브라인이 있었지만 시청자들을 설득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JTBC ‘순정에 반하다’에서는 극 초반부터 목숨을 잃는 바람에 김소연과의 로맨스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드라마 KBS 2TV ‘태양의 후예’는 진구가 사랑 이야기로 각광받은 첫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터다.
많은 사람들이 ‘태양의 후예’를 진구의 인생작으로 꼽는 이유는 또 있다. 해당 드라마 속 그는 배우로서 13년을 유지해 온 ‘상남자’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납득 가능한 러브라인을 펼치고 있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조연이지만, ‘구원커플(진구·김지원)’이 ‘송송커플(송혜교·송중기)’ 만큼의 인기를 얻고 있는 데는 진구에게 서대영이라는 배역이 맞춤옷처럼 떨어졌던 덕이 크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 주고, 냉정 뒤에 온정을 남겨둔 서대영 캐릭터를 통해 진구만의 고전적 느낌이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수많은 작품 속 죽거나 사랑에 실패했던 슬픈 인물을 찰떡 같이 소화해냈던 진구였지만, 이번엔 다를 듯하다. 그의 부드러운 변신이 반갑다. ‘태양의 후예’ 속 서대영 상사가 맞을 해피엔딩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태양의 후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