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은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이미지는 아니다. 표정과 목소리에서부터 에너지가 넘쳐서 화면을 뚫고 나올 것 같은 카리스마를 발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남자스러운 역할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수많은 배우들 가운데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로 손꼽히는 이유다.
지난 1988년 연극 ‘대결’로 데뷔해 영화 ‘평양성’ ‘님은 먼 곳에’ ‘즐거운 인생’ ‘왕의 남자’ ‘달마야 놀자’ ‘강남 1970’, 드라마 ‘엔젤아이즈’ ‘사랑비’ ‘브레인’ ‘동이’ ‘영도다리를 건너다’등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인간의 내면을 그려왔다.
지난해 방송을 시작한 MBC 월화드라마 ‘화려한 유혹’에서는 전 국무총리 강석현 역할을 맡아 마치 실존인물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석현은 싱글맘이자 메이드 신은수(최강희 분)와 재혼했는데, 모든 것을 다 바칠 듯한 애정을 쏟아부으며 중년 여성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정진영은 16일 서울 팔판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최강희와의 호흡에 대해 “아주 좋았고 만족스러웠다. (드라마가)석현과 은수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석현의 짝사랑이지 않나. 그렇지만 은수가 갖고 있는 이중적인 감정이 모두 표현됐다. 그녀가 석현에게 의지하다가도 이용하려는 부분이 재미있게 표현됐다”고 말했다.
정진영은 석현이 돈과 명예, 권력을 쫓으면서도 첫사랑을 닮은 은수에게 마음을 바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최강희의 장점에 대해 “다 예쁘지만 그 중에서도 눈이 굉장히 예쁜 배우다. 멜로연기는 상대 연기자의 눈을 깊이 바라보고 해야하는데, 강희 씨의 눈이 멜로 연기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칭찬했다.
정진영은 이 드라마를 통해 2015 MBC 연기대상에서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해 연기력과 시청률 파워를 가진 배우로 입지를 굳혔다.
정진영은 “10회 방송 이후 좋아해주시는 게 조금씩 느껴지더라. 사람들이 저를 ‘총리님’이라고 불렀다.(웃음) 제가 연기한 캐릭터를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했다. 상대적으로 석현의 등장이 진지해지다보니 (최)강희나 (주)상욱이에게 미안한 면도 있다”고 후배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많은 후배 연기자들이 정진영을 닮고 싶은 선배로 꼽지만 단숨에 스타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데뷔 이후부터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물론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영화 ‘7번방의 선물’ ‘국제시장’ ‘왕의 남자’, 그리고 드라마 ‘엔젤아이즈’ ‘브레인’ ‘동이’ 까지 주·조연에 관계없이 쉬지 않고 부지런히 작품 활동을 해오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앞으로 어떤 배우로 남고 싶냐는 질문에 “그런 것은 없다. 배우에게 가장 좋은 찬사는 ‘그 인물은 그 배우가 한 게 옳았다’는 말인 것 같다. 작품을 할 때마다 호응이 있든 없든 저 역할을 다른 사람이 했어야 하는데라는 말만 듣지 않으면 감사할 것 같다”고 답했다./ purplish@osen.co.kr
[사진]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