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어적 표현이었다. 영화 ‘글로리데이’(감독 최정열, 24일 개봉)가 청춘을 영광스러운 날이라고 표현한 것은 말이다. 오히려 갓 20살이 된 아이들에게 청춘이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가혹했다. 이에 관객 입장에서는 속이 꽉 막힌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아이러니하지만, 감독은 여기서 희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글로리데이’는 해병대 입대를 앞둔 상우(김준면 분)를 위해 포항으로 여행을 떠난 용비(지수 분), 지공(류준열 분), 두만(김희찬 분), 상우 네 명의 우정을 그린다. 이들은 학창시절부터 몰려다니던 4인방이다.
영화 속에는 묘하게 계급이 존재한다. 지공은 아버지가 서울시의원으로 소위 ‘금수저’다. 두만은 야구감독인 아버지 덕분에 부족한 실력이지만 야구로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용비는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를 제외하고, 형과 단 둘이 살고 있다. 상우의 상황은 가장 열악하다. 고철을 주워다 생계를 유지하는 할머니와 살고 있는 것. 하지만 성인이 되기 전까지 친구를 사귀는 과정에서 경제적 조건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4인방은 진정한 우정을 나누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성인이 되고 문제가 일어난 순간 이 계급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동일하게 위기의 순간을 맞이했지만, 동일하게 책임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강요하는 어른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면 너도 지금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을 끝까지 몰아붙인다. 우정보다는 현실을 보라고. 이것이 진정한 어른이 되는 과정인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영화 속에서 어른들은 진실에 관심이 없다.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어주지 않는다. 판단의 기준은 진실보다는 돈, 권력과 같은 것들이다. 끝까지 영화는 앞선 가치를 내세우는 어른들로 인해, 또 이를 받아들여가는 아이들의 모습로 인해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감독은 희망을 말하고자 했다고. 바로 영화를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어른 관객들에게서 말이다. 그 뜻은 오프닝과 엔딩에 담겨 있다. 오프닝과 엔딩에는 수미상관 구조로 동일한 신이 삽입됐다. 바다를 향해 해맑게 웃으며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렇게 웃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어떤 가치를 강요하고 무슨 짓을 했는지 책임을 통감한다면 감독의 의도는 성공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글로리데이’는 불편하지만 동시에 희망을 전하는 것이다. / besodam@osen.co.kr
[사진] '글로리데이'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