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드라마 효자 Vs 영화 탕아, 요물 같은 멜로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3.18 11: 38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KBS2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그야말로 블랙홀의 마력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소용돌이로 작용하는 배경은 누가 뭐라 해도 송중기 송혜교 진구 김지원 등 주연배우 4명의 로맨스다.
입맛이 실 정도의 유치함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기시감도,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비현실감도 모두 떠나 그냥 그들은 아름답고 그들의 사랑은 달달하거나 아프다. 이 드라마는 액션 전쟁 재난 병원 에피소드 등의 재미있는 요소를 다수 포함한 채 밀리터리와 메디컬의 영역을 넘나들지만 스토리의 중심은 사랑과 우정이다.
그건 성공하는 모든 드라마의 흥행공식이다. 요즘 드라마는 간이역에서 우동 먹기 식의 벼락치기 제작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발전한 게 사실이다. 그 중심은 장르의 다변화다. 사극이 퓨전으로 크로스오버의 변이를 하는가 하면 영화에나 있을 법한 다양한 장르를 가져오고 각 장르 간 이종결합과 이합집산이 이뤄져 시청자의 눈과 정서를 호강시켜 주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드라마의 흥행의 계산서는 역시 멜로다. 재벌 얘기가 단골이고, 중국 무협영화를 방불케 하는 테크노 무술이 난무해도 결론은 남녀의 사랑얘기다.
영화와 드라마의 시작은 멜로였다. 그런데 요즘 극장가와 TV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드라마는 허물을 벗고 또 벗어도 멜로라는 귀착점에서 시청자를 환호하게 만들지만 영화는 멜로만 찍었다 하면 관객들로 하여금 지쳐서 헐떡거리게 한다. 왜 그런 걸까?
지난해 개봉된 ‘오늘의 연애’가 189만 명의 관객을, ‘뷰티 인사이드’가 205만 명의 관객을 각각 동원한 것을 제외하면 최근 멜로영화는 대부분 죽을 쑨다. 이제 3개월밖에 안 지났지만 올해 멜로의 성적은 더욱 비참하다. 정우성이 주연 및 제작을 맡을 정도로 애정을 보이고 멜로퀸 김하늘이 상대역으로 열연한 ‘나를 잊지 말아요’는 42만 명을 동원했다. 유연석 문채원 주연의 ‘그날의 분위기’는 65만 명으로 그나마 선전(?)한 셈이고, ‘칸의 여왕’ 전도연과 지금이 딱 멜로영화로 승부를 보기 좋은 공유가 주연한 ‘남과 여’는 20만 명이란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쥐어야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해 가장 큰 화제의 중심에 섰던 유아인을 비롯해 강하늘 김주혁 이미연 최지우 등 화려한 멀티캐스팅으로 기대감을 상승시켰던 ‘좋아해줘’ 역시 나쁘지 않은 반응에도 불구하고 84만 명이라는 부끄러운 스코어로 막을 내려야 했다.
영화의 첫 번째 위기는 TV의 발명 때 찾아왔다. 두 번째는 컬러TV의 보급 때였다. 하지만 영화는 드라마나 쇼와는 다른 완성도와 예술성 그리고 ‘무비스타’라는 희소가치로 TV와 공존하거나 더 큰 흥행을 일궈내며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영화와 드라마의 제작 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리더가 각각 감독과 작가로 나뉜다는 데 있다. 성공하는 영화가 감독의 역량에 의해 관객을 끌어 모으고 그들의 감동과 재미를 모두 이끌어낼 수 있듯이 드라마의 성공은 작가의 펜대가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시청자 혹은 관객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돈과 접근성이다. 드라마는 매달 습관처럼 자동결제되는 수신료를 제외하면 따로 큰돈을 들일 필요가 없이 집에서 손쉽게 아주 편한 자세로 볼 수 있지만 영화는 일부러 외출복을 갈아입고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한 뒤 1만 원을 들여 표를 끊고 일정 시간을 기다린 뒤 관람해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게다가 대다수는 혼자가 아닌 동반자와 함께 관람하기 마련이다. 드라마는 무의식적인 독자 시청이 가능하지만 영화는 굉장한 의지와 노력과 파트너가 수반된다.
이건 단순히 1만 원 한 장의 의미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영화만의 변별성을 갖춰야 관객을 끌 수 있다. 드라마는 욕하면서도 본다. 하지만 영화는 입소문이 나쁘면 극장 간판도 안 쳐다본다.
이런 환경 속에서 멜로는 옷장 속 깊숙한 곳에 처박힌 ‘가다마이’와 다름없다. 갓 성년이 됐을 때 부모님이 기념으로 사줬을 구닥다리 디자인의 그 재킷은 지금 꺼내 입어봐야 몸에 맞지도 않지만 설령 맞을지언정 밖에 입고 나갈 수 없는 촌스러움이다. 굳이 입자면 수선 등의 리폼이 필요하다. 과장된 어깨와 긴 소매를 줄여야 하고 넓은 깃도 좁게 고쳐야 한다. 그게 바로 장르의 합성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의 멜로영화라면 ‘프리티 우먼’ ‘노팅 힐’ ‘러브 액츄얼리’다. 이 중 ‘프리티 우먼’과 ‘노팅 힐’은 전형적인 ‘신데렐라’의 틀이었기에, ‘러브 액츄얼리’는 다양한 사람과 그들의 각기 다른 사랑 얘기를 그린 옴니버스 형식으로 변화를 줬기에 각각 성공할 수 있었다. 만약 지금 ‘프리티 우먼’이나 ‘노팅 힐’ 같은 ‘백마 탄 왕자(공주)’ 스토리를 영화화한다면 무조건 망할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 ‘러브 액츄얼리’가 그 증거다.
지난해 재개봉돼 첫 개봉 때보다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한 ‘이터널 선샤인’이 또 다른 해법이다. 모든 출연진이 주조연인 이 영화는 그들의 각기 다른 사랑과 인생관을 그리는데 그게 미스터리 형식으로 관객의 뒤통수를 때리는 묘수를 자랑하기 때문에 10년이 지나 재개봉됐음에도 더욱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바꿔 말하자면 첫 개봉 때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갔기에 진가를 인정받지 못했다가 감독보다 센스가 늦은 관객들이 이제야 이해하게 된 것이다.
멜로영화가 흥행이 잘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로 드라마의 발전과 진화를 들 수 있다. ‘태양의 후예’는 국내 4대 영화배급사 중 하나인 뉴가 사전제작 시스템으로 제작함으로써 비교적 탄탄한 완성도를 갖췄다. 그렇다고 ‘쪽대본’으로 졸속(?) 제작한 다른 드라마들이 모두 졸작인 것은 아니다. 그렇게 촌각을 다투며 매 회 ‘깔딱고개’를 넘어가며 만들었지만 의외로 완성도와 메시지가 탄탄한 드라마도 많다.
‘슈퍼맨’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별에 서 온 그대’가 진부한 클리셰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게 많은 시청자가 바보일 순 없다.
멜로가 드라마에선 여전한 효자이지만 영화에선 애물단지인 이유는 결국 제작진의 안일함에 있다. 아직도 신영균 문희의 ‘미워도 다시 한 번’이나 신성일 엄앵란의 ‘맨발의 청춘’이 먹힐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나태한 일부 영화인들이 제작이 쉽고 가성비가 뛰어난 멜로라는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이 관객들의 수준은 이미 그들의 나태한 답보상태를 뛰어 넘은 것이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태양의 후예' '남과여'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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