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의 오차장은 없었다. 오직 이성민이 새로 만들어낸 '기억'의 박태석만이 있었을 뿐이다. 벌써부터 느껴지는 ‘인생작’의 기운에 시청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18일 첫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기억’은 여러모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었다. 일명 ‘복수 3부작’이라는 불리는 ‘부활’ ‘마왕’ ‘상어’를 만들어 낸 박찬홍·김지우 콤비의 신작이자, 유종의 미를 거두며 종영한 ‘시그널’의 후속작,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의 인기를 끌었던 ‘미생’ 이후 이성민의 tvN 복귀작이기 때문.
그리고 마침내 베일을 벗은 ‘기억’은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내놓았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그려지는 전개와 알츠하이머라는 독특한 소재, 배우 이성민의 두 말 할 필요 없는 연기력이 어우러지며 일단 ‘합격점’을 받아내는데 성공한 것.
특히 이성민은 ‘미생’의 오차장 캐릭터의 강렬한 이미지를 지울 수 있을까하는 일각의 우려를 비웃듯 완벽하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오차장이 정의롭고 매사에 열정 넘치는 인물이었다면, 박태석은 지독한 워커홀릭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이와 정반대였다.
이날 잘 나가는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인 박태석은 한국 에너지 그룹 부사장 신영진(이기우 분)이 직접 의뢰한 사건을 맡게 됐다. 한국병원의 의사 차원석(박주형 분)이 저지른 의료사고의 변호로, 이를 내부 고발한 김선호(강신일 분)를 회유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갖은 회유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김선호에 박태석은 급기야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신경외과 의사이자 유일한 절친 주재민(최덕문 분)으로부터 김선호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고 결혼을 앞둔 그의 딸에게도 유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길 듣고, 이를 빌미로 그에게 입을 다물라고 압박한 것.
이러한 그의 잘못은 커다란 비극으로 돌아왔다. 박태석은 절망에 빠진 김선호가 병원에서 투신자살한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 역시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야말로 죗값을 치르라는 듯 닥쳐온 비극과 함께 그의 고난이 예고됐다.
1회에서 그려진 박태석의 모습은 철저한 권력지향주의에 빠진 냉혈한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전처 나은선(박진희 분)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사고로 먼저 세상을 뜬 일은 박태석에게 약점이자 상처였다.
단 한 회부터 분노부터 슬픔, 절망까지 다양한 감정을 분출하며 하나의 캐릭터를 구축해나가고 있는 이성민. 그의 본격적인 활약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미생’이라는 강력한 그림자를 지우고 ‘기억’이라는 새 옷을 입은 이성민의 변신에 많은 이들의 기대가 향하고 있다. / jsy901104@osen.co.kr
[사진] ‘기억’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