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을(乙) 연기의 '끝판왕'이라 칭해도 되겠다. 배우 윤상현이 오랜만에 돌아온 드라마에서 소심하고 찌질한 인물을 제대로 연기하며 호평을 끌어냈다. 시청자들은 그의 섬세한 연기를 칭찬하며 주인공의 감정에 공감을 표하는 한편 그로 인해 살아난 코미디에 열광하고 있다.
윤상현은 지난 18일 오후 방송된 JTBC 주말드라마 '욱씨남정기'(극본 주현 연출 이형민)에서 화장품 납품업체 과장 남정기 역할을 맡았다. 남정기는 후배들에게 승진의 기회를 빼앗겨도 꾹꾹 참으며, 기회가 와도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려워하는 소심한 인물.
이날 남정기는 대기업과의 납품계약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업무를 맡아 밤을 새가며 준비했다. 하지만 프레젠테이션 날, 앞집에 새 이웃이 이사를 오면서 일은 꼬이기 시작했다. 이사업체 직원들은 남정기의 집이 이사 갈 집이라고 착각, 그의 집을 정리하는 실수를 했고, 아파트 복도는 옆집의 가구들로 가득 차 현관문조차 열리지 않았다.
아수라장을 뚫고 출근한 남정기는 프레젠테이션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 실수에 실수를 거듭했다. 사장, 부하직원과 함께 거래처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만난 욱다정(이요원 분) 팀장을 여직원으로 착각 커피 심부름을 시켰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남다정에게 건넨 화장품 샘플은 용기가 깨져 있었다.
다혈질에 깐깐하기로 유명한 욱다정은 단칼에 계약을 거절했고, 남정기는 그런 그를 붙잡으려다 실수로 옷을 뜯어버리는 일을 저질렀다. 결국 욱다정은 분노해 돌아섰고, 남정기의 회사는 총체적 위기에 처했다. 남정기는 욱다정의 마음을 돌리려 고군부투 했다. 그렇지 않아도 남정기가 줬던 샘플을 사용하며 적잖은 만족감을 느꼈던 욱다정은 "기회를 줄테니 보여달라"는 남정기의 문자를 받고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로 오라고 했다.
하지만 소심하고 찌질한 남정기의 성정과 욱다정에 대해 갖고 있었던 선입견이 문제였다. 남정기는 욱다정의 말을 오해해 그 앞에서 옷을 벗으며 다시 한 번 크게 분노를 샀다.
윤상현은 그간 다양한 작품에서 안정적인 연기로 사랑을 받아왔다. 시청자들에게 연기자로서 그의 얼굴을 처음으로 각인시켰던 작품은 드라마 '겨울새'. '겨울새'에서 찌질한 남편 역을 맡은 그는 탁월한 연기력으로 안방극장에 눈도장을 찍었고, 이후 작품들에서 탁월한 연기력으로 '연기파' 배우의 이미지를 얻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이름값은 '욱씨남정기'에서 제대로 그 가치를 발휘했다.
윤상현은 매력적인 역할도, 소심한 역할도 매번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소화하는 '믿고 보는 배우'다. 이번에도 그는 욱다정 앞에서 소심하게 애원하거나, 욱다정의 말을 오해해 옷을 벗는 등 어딘지 모르게 찌질한 남정기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려내며 공감과 웃음을 줬다. 과연 찌질한 을(乙) 연기를 제대로 보여준 윤상현은 근래에 들어 부진했던 JTBC 주말드라마의 전성기를 시작을 이끌게 될까? 귀추가 주목된다. /eujenej@osen.co.kr
[사진] '욱씨남정기'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