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한 듯 하지만 폭발력은 최고다. 눈빛 하나에 미소 한 번에 함축된 모든 감정이 담겼다. '갓성민'이라 불리는 배우 이성민의 얘기다. '기억'에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좌절한 변호사 박태석 역을 그보다 더 실감나고 세심하게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또 있었을까 싶다.
이성민은 익히 잘 알려진 연기 잘하는 배우다. 드라마 '골든타임'과 '미생', 그리고 다수의 영화를 통해 다져진 그의 연기력은 시청자들을 집중하게 만드는 흡입력이 대단하다. 눈가의 주름 하나까지도 연기를 하는 것 같은 그 세심함,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이 최고다.
지난 19일 오후 방송된 케이블채널 tvN 금토드라마 '기억'(극본 김지우, 연출 박찬홍) 2회에서는 그런 이성민의 연기가 더욱 폭발적이었다. 친구로부터 알츠하이머 초기라는 진단을 받은 태석의 심정과 알츠하이머와 함께 한꺼번에 찾아온 위기에 방황하는 그의 모습은 이성민으로 하여금 생동감 있게 태어났다. 어떤 배우와 서도 분위기를 압도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태석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것과 함께 김 박사(강신일 분)가 자살하면서 그의 유서에서 태석의 명함이 발견돼 경찰의 의심을 사는 내용 등이 담겼다. 결국 언니를 위한 소송을 위해 태석이 필요했던 간호사 유선희가 김 박사의 유서를 조작했던 것으로, 태석을 살기 위해 또 한 번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이성민의 보여준 연기는 다양했다.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좌절한 변호사,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대한 분노와 한 어머니의 아들, 또 딸에게는 자상한 아빠였다. 이성민의 연기는 뭉클했고, 한 시간 동안 온전히 몰두해서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게 빼곡하게 화면을 채워갔다. 특히 어머니(반효정 분)와 통화하는 부분이나 딸 박연우(강지우 분)와의 전화 통화에서 드러난 애틋함, 그리고 죽은 아들 동우에 대한 그리움과 절절함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시청자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정진 역의 이준호화의 호흡도 인상적이었다. '미생'에서 임시완과 호흡하면서 색다른 상사와 부하 직원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그려냈다면, 이번엔 이준호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제 연기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준호는 이성민의 탄탄한 연기를 곧잘 따라갔다.
사실 처음부터 이성민의 연기를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방송을 보면 또 시청자들을 새삼 감탄하게 만들었다. 눈에 가득 찬 눈물처럼, 알츠하이머의 압박 속에서 가족을 지키고 자신을 지켜야 하는 태석은 이성민 그 자체였다. 진심으로 더할 나위 없는 연기다. /seon@osen.co.kr
[사진]tvN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