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은 듣기만 해도 숨이 탁 막히는 단어다. 사회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봤다면, 이 '갑을'이 얼마나 끔찍한 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관계인지 안다.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드라마 역시, '갑을'이라는 장치를 종종 끌어들인다. 이는 시청자의 공감을 얻기가 쉽다.
종편채널 JTBC 금토드라마 '욱씨남정기'(극본 주현, 연출 이형민) 역시 그러하다. 과거 흥행했던 tvN 드라마 '미생'을 떠올리게 하는, '갑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을들의 고군분투기'라는 카피가 인상적.
지난 19일 방송된 '욱씨남정기' 2회에서도 소심한 을 남정기 과장(윤상현)의 모습이 다양하게도 그려졌다. 앞서 황금화학 팀장 욱다정(이요원)으로부터 계약을 따내지 못해 좌절을 한 차례 맛봤던 그는, 귀가 후에도 그의 앞집에 새롭게 이사온 이가 욱다정이라는 사실에 큰 한숨을 내쉰다. 더욱이 계단에 올려놓은 아들의 자전거가 이사를 방해했고, 그로 인해 생겨난 피해를 모두 보상하라며 자전거까지 가져갔다.
어쩔 수 없다. 욱다정은 여전히 황금화학의 팀장이고, 자신이 다니는 러블리 코스메틱과 중요한 계약을 앞둔 회사다. 그 과정에서 남정기는 철저한 '을'이다. 성사될 듯한 계약은 결국 엄청나게 부당한 조건으로 도장을 찍어야 했고, 과도한 접대까지 해야했다. 남정기가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며, 비관할 법도 하다.
근데 '갑'인 욱다정이 그를 자극했다. 그렇게까지 부당한 거래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성사된 계약서까지 찢어버리며 욱다정은 이를 막아섰다. 이후 욱팀장은 자신의 회사를 떠났다.
앞서도 욱다정은 그가 다른 곳과 계약을 앞두고 있다며 거만한 태도를 보일 때, 해당 회사에 전화해서 그들이 남정기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시켜줬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의 자잘하 문제들을 해결해주기도 했다. 자신의 차를 들이받은 차가 남정기의 차라는 사실을 알아도, 전단지만 붙이면 사과를 기다렸다.
결국 욱다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비상식적인 '갑질'을 지양하는 모습이 또렷하다. 상사의 갑질에 맞서기도 한다. 그런 욱다정이 러블리 코스메틱 마케팅 본부장으로 왔고, 남정기의 직속 상사가 됐다. 어쩌면 그의 '을'로 점철된 인생을 조금은 바꿔주지 않을까. 욱다정처럼 애정이 묻어나는 따뜻한 '갑질'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 gato@osen.co.kr
[사진] '욱씨남정기'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