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방송부터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KBS 2TV ‘베이비시터’가 4부작의 짧은 여정을 마무리했다. 쏟아지는 찬사 만큼이나 혹평과 불만도 많았지만,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의 마음에 공통적으로 남은 것이 배우 조여정의 연기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조여정이 ‘베이비시터’에서 선보인 천은주 역은 연기자로서 그의 존재감을 단번에 상승시키는데 주효했다.
지난 14일 첫 방송된 ‘베이비시터’는 반대를 무릅쓰고 재벌 후계자 유상원(김민준 분)과 결혼한 천은주(조여정 분)가 베이비시터(신윤주 분)와 바람이 난 남편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다뤘다. 이때 최근 드라마계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핏빛 치정극까지 펼쳐지며 보는 재미를 더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베이비시터’가 종영하기까지 이 드라마를 ‘하드캐리’한 것은 조여정이 만들어 낸 극 중 천은주였다.
작품 속 전체적으로 흐르는 탐미주의적 분위기는 ‘베이비시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조여정의 공허한 눈빛과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특히 천은주를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에서 그 작은 몸이 깨져라 감정을 폭발시키는 열연은 조여정의 ‘인생 연기’라 해도 지나침이 없었다.
말만 ‘핏빛’이 아니라 진짜 손에 피를 묻힌 복수극이 펼쳐진 최종회에서는 조여정의 연기가 더욱 빛을 발했다. 그저 남편과의 행복만을 꿈꾸던 시절, 주황색 수의를 입은 채 주변의 모든 것에 날을 세우던 때, 남편과 불륜녀를 잔인하게 처단하는 찰나까지 저마다 전혀 다른 감정을 담아 표현해야 했던 순간들을 조여정은 매우 능숙하게 소화했다. 방송 말미 전부 천은주가 꾸며낸 이야기로 드러나기는 했지만, 출소하던 날 곱게 단장하고 유상원을 찾아가 마지막으로 부부처럼 살갑게 굴어달라 부탁하는 그의 모습은 소름을 유발하기 충분했다.
마지막 1분에 1초까지 반전을 거듭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다보니 천은주 캐릭터의 입체성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질투에 눈이 멀어 장석류를 살해하고 친구 표영균(이승준 분)까지 죽인 남편의 죄를 뒤집어쓰기 위해 꾸며낸 사연을 기자를 통해 공론화한 영악함, 그 와중에 심신상실이라는 키워드를 넣어 감형을 꾀한 철저함, 불륜을 저지른 남편을 트럭으로 밀어버렸다는 감옥 친구의 힘을 빌어 유상원을 제거한 잔혹함이 천은주 안에 다 있었다.
이처럼 설명만 들어도 복잡하고 어려운 캐릭터를 제 옷처럼 소화한 조여정의 연기력 자체가 ‘베이비시터’의 개연성이었다. 그간 저평가됐던 그의 실력이 좋은 작품을 만나 꽃피기를 기대해 본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베이비시터’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