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와 기막힌 연결이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조화를 이뤘다. 끝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육룡이 나르샤', 지금껏 이렇게 완벽한 프리퀄 사극은 없었다.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신경수)가 지난 22일 50부작의 대장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 드라마는 철혈군주가 되는 이방원(유아인 분)을 중심으로 육룡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팩션 사극이다. 마지막회에서 이방원은 태종이 되었고, 대마도 정벌이 이뤄지게 된 계기도 그려졌다. 또한 태종의 셋째 아들인 이도, 즉 세종이 한글을 창제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모습 역시 볼 수 있었다.
이는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전작인 '뿌리깊은 나무'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내가 '육룡이 나르샤'를 보고 있는건지, '뿌리깊은 나무'를 보고 있는건지 순간 착각이 들 정도. 그만큼 '육룡이 나르샤'는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로서 더할 나위없는 짜임새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사극 대가들이 모인 제작진, 명배우 등 '사극 어벤져스'라 불리며 기대를 모았던 것에 비하면 '육룡이 나르샤'의 시청률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하지만 50회 방송 내내 단 한번도 월화극 1위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 빠듯한 촬영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는 점, 초반 우려와는 달리 전혀 다른 이방원을 그려내며 설득력을 입혔다는 점 등 '육룡이 나르샤'가 명품 사극이라 극찬받을 이유는 차고 넘친다.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육룡인 이성계(천호진 분), 정도전(김명민 분), 이방원, 이방지(변요한 분), 분이(신세경 분), 무휼(윤균상 분)을 통해 너무나 다른 위치와 상황에 놓여 있는 각각의 인물들에게 국가가 가지는 의미를 촘촘하게, 또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이 과정에서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을 적절하게 섞어내 예측불허의 전개를 만드는 한편, 대사 한 마디까지도 허투루 사용되지 않게 하며 놀라운 흡입력을 자랑했다.
위화도 회군, 선죽교 비극, 왕자의 난 등 역사적 사건에는 다 명분이 있었고, 그 안에서 행동하는 이들 역시 각각의 이유를 품었다. 그리고 '낭만'이라는 단어를 시작으로 "살아있다면 뭐든 해야한다", "벌레를 토해내라", "사람들 웃게 만드는 정치", "정치란 나누는 것" 등 극 중에 등장했던 대사들은 끝까지 이방원이라는 인물의 심장을 두드리고 생각을 거듭하게 하는 장치로 사용됐다. 분이(신세경 분)를 보고 "낭만적"이라고 하며 사랑을 시작했던 이방원이 있었기에 "내게 그런 낭만이 남아 있을 것 같으냐"라는 그의 마지막 말이 큰 여운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이방원이라는 인물에 대한 남다른 해석은 '육룡이 나르샤'만의 차별점이라 할 수 있다. 그간 이방원은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절대 군주 혹은 악인으로 그려져왔던 것이 사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방원이 '잔트가르'(최강의 사내)라 부르며 스승으로 모셨던 정도전(김명민 분)에게서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현실감 있고 설득력 있게 표현해내 시청자들의 공감도를 높였다.
또한 정치를 하기 위해 더욱 강하고 잔혹해져야 하는 이면에 사무치는 외로움을 감당해야 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까지 녹여냈다. 이는 소름 돋는 연기력으로 대체 불가의 이방원을 만들어낸 유아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간에도 연기 잘하는 배우로 손꼽혔던 유아인은 이번 '육룡이 나르샤'를 통해 또 한번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며 믿고 보는 배우임을 공고히 했다.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이방원을 그리면서 그가 행한 처참한 일을 안했다고 하기보다는 더 보탰다. 예을 들면 두문동 방화 사건, 방석을 직접 죽인 역사적 기록도 없다.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이방원을 응원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방원을 미워하지 말자'에서 출발한 것은 맞으나 일부러 미화적으로 해석하고자 하지는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절대 악인도, 절대 선인도 없는 '육룡이 나르샤' 속 인물들은 저마다 개성이 넘쳤다. 또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적 사건들이나 육룡이 각성을 하는 장면 등은 기대를 뛰어넘는 명장면으로 재탄생돼 안방 시청자들에게 전율을 안겼다.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모든 대본 작업을 마친 뒤 "작가로서 로망이자 모험이었다"라고 소회를 밝히는 한편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해야 했기에 손발 묶여 링에 올라간 느낌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50회 끝까지 퀄리티를 잃지 않고 더 단단해지는 느낌의 좋은 작품을 만들어준 SBS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만큼 '육룡이 나르샤'는 근래 보기 힘든 명품 사극이었고, 사극이라는 장르에 새로운 해답을 안겨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parkj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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