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탐구]영화 속 ‘알파고 Vs 이세돌’, 희망인가 재앙인가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3.23 07: 39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세기의 대국’이 열리기 전 이세돌은 최소한 4승1패로 자신의 절대적인 우위를 장담했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이 인간 대 컴퓨터의 바둑 대결로 인해 전 세계의 인류는 바둑이 아닌 인공지능에 대해 새삼스레 관심을 갖게 됐고, 이젠 두려움마저 품게 됐다.
그런데 할리우드의 영화는 이미 1968년 이를 예고했고, 그 후 무수한 영화들이 이를 소재로 삼거나 아예 주제로 기둥에 세워 과학을 맹신하는 인간을 조롱하거나 경고하고 있다.
효시는 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걸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다. 무려 48년이 됐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이 영화의 주제는 인공지능에 대한 진지한 고뇌보단 우주생성과 인간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인류의 문명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다.

영화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클래식을 주제곡으로 배경에 깔고 있다. 그리고 인트로의 인류 탄생 이전의 유인원이 우주에서 날아온 검은 비석에 의해 처음으로 문명을 깨우침으로써 동물의 뼈를 무기로 활용할 줄 알게 돼 폭력과 살상에 사용함으로써 무력정벌을 해간다는 것을 암시한다. 결국 검은 비석의 정체 혹은 기원을 찾아 목성탐험에 나섰던 21세기의 주인공이 지구로 돌아와 죽어가는 자신과 다시 태어나는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영원회귀의 사유를 뛰어넘는 위버멘쉬(극복하고 긍정하며 의미를 완성하는 존재)라는 니체의 철학을 설파한다.
이는 불교의 윤회사상이나 열반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고, 더불어 요즘 미국의 케이블TV 다큐멘터리인 ‘Ancient alien’(‘고대의 외계인’-인류의 문명은 고대에 외계인이 전수해줬다는 가설을 증명하고자 하는 내용)이란 프로그램과도 연결된다.
그런데 목성탐험에 나선 우주인들이 위기를 맞으니 바로 슈퍼컴퓨터 HAL9000이 자신의 실수를 감추고자 반란을 일으키는 것. 큐브릭 감독의 우주관은 리들리 스캇 감독에게 어느 정도 전수(?)됐으며 인공지능에 대한 과학적 관점은 제임스 캐머런과 워쇼스키 자매(둘 다 성전환) 감독 등 수많은 작가들에게 이어지고 있는데 그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설 것을 거의 50년 전에 예언한 셈이다.
물론 아직 속단하긴 이르다. 국내외의 유력 언론들은 알파고의 등장과 향후 벌어질 인공지능의 무궁무진한 발전에 대해 희망과 위험의 양극의 예측으로 각 진영의 설전을 유발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어느 쪽으로도 결론을 내릴 순 없다.
하지만 수많은 영화인들은 비관적이다.
14년 뒤 스캇 감독은 한참 뒤 ‘저주받은 걸작’이라 평가받는 ‘블레이드 러너’를 내놓는다. 때는 2019년의 LA. 타이렐 사는 사실상 인간과 다름없는 단계의 진화한 로봇 리플리컨트를 생산하던 중 최고로 진화한 넥서스6 모델을 우주개척 노동 용도로 생산하지만 이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리플리컨트 전문 사냥꾼인 블레이드 러너 중의 베테랑 데커드가 그들을 해고(사람들은 복제인간을 죽이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다)하기 위해 투입된다.
이 복제인간은 신체조직 중 일부가 회로로 연결돼 있고, 과거가 없이 성인으로 태어난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실제 인간의 기억을 인공적으로 주입받았기에 남이 알려주기 전엔 자신이 복제인간인 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사건 수사 중 데커드는 타이렐 사의 회장을 만나는 과정에서 레이첼을 알게 되고 자신이 복제인간인 줄 모르는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넥서스6의 리더 로이는 자신의 동료들을 모조리 데커드가 해고하자 레이첼을 해고한 뒤 데커드를 죽이려는 순간 오히려 그를 구한다. 왜냐면 리플리컨트는 수명이 매우 짧았고, 그는 자신의 유통기한이 다됐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엑스 마키나'
이 영화는 인공지능이 오히려 사람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역설을 펼친다. 만약 로이가 사람이었다면 자신이 곧 죽을 줄 알더라도 자신의 동료와 연인을 죽인 원수를 죽일 기회에서 그렇게 한 뒤 죽음을 맞았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분노가 불러일으킨 폭력의 본능은 강렬한 복수심과 단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4년 뒤 캐머런 감독은 드디어 인간에게 저주를 건다. ‘터미네이터’다. 고도로 발달한 컴퓨터가 인간들로 하여금 자폭해 거의 전멸하게끔 만든 뒤 기계왕국을 건설하고는 살아남은 인류를 마치 사냥하듯 죽이는 걸 즐긴다는 절망적인 플롯이다.
그 ‘교리’는 1999년 워쇼스키 자매(당시엔 형제)의 ‘매트릭스’ 3부작으로 이어져 더욱 사람들에게 낭패감을 안겨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실은 기계가 만든 허상이었다니!
뒷북을 친 감독도 있다. 2004년 알렉스 프로야스는 ‘아이, 로봇’을 통해 이미 진부해진 컴퓨터의 반란을 다룬다. 다만 로봇과 컴퓨터를 진압하는 주인공인 형사를 통해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와 그 중요성을 강조한 복고적 정서만큼은 인정받아야 하겠지만. 복선도 깔았다. 그토록 로봇을 혐오하는 그는 사고로 잃은 한쪽 팔을 로봇의 부품으로 대체했다. 이 팔이 중앙컴퓨터를 파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는 아이러니.
가장 늦게(2015) 나왔지만 나름대로 신이 창조한 인간, 인간이 창조한 인공지능에 대한 철학을 녹여낸 알렉스 갈랜드의 ‘엑스 마키나’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 연극의 ‘기계를 타고 내려온 신’이란 장치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서 제목을 빌려온 데서 영화의 메시지는 확고하다.
블루독이란 굴지의 검색엔진 회사 회장이 사람처럼 진화하는 지능과 감성을 가진 ‘여성’ 로봇을 개발하고 자사의 뛰어난 프로그래머를 불러 인공지능 판별법 튜링테스트를 하게끔 만든다. 이 로봇은 도구로 제 팔을 찔러 자신이 로봇인지 사람인지 알고자 할 정도로 자아가 성립됐고 발달하고 있으며 어느새 프로그래머는 이 ‘여자’에게 빠져든다. 어디서 많이 본 구조다. 그렇다. ‘블레이드 러너’다.
반대의 시각으로 바라본 영화도 있다. 브렛 레너드 감독의 ‘론머 맨’(1992)과 윌리 피스퍼 감독의 ‘트랜센던스’(2014)다. 인간이 아예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신이 되려 한다는 끔찍한 내용이다.
모두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구조의 카오스가 넘쳐나지만 따뜻한 영화도 있었다. ‘바이센테니얼 맨’이다. 평범한 가사도우미 로봇 앤드류가 어느 날 회로 속에 마요네즈가 흘러들어간 뒤 예술성과 정체성을 갖게 돼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고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 끝에 드디어 200년 만에 사람이 된다는 내용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로봇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으로 방방곡곡을 누빈 끝에 ‘여성’ 로봇 갈라티를 만난다. ‘지능보단 성격이 있는 게 더 낫다’는 ‘인생관’을 가진 그녀는 쉴 새 없이 춤추고 노래 부르고 재잘댄다. 앤드류처럼 예술성을 갖춘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만든 루퍼트 박사는 ‘정신없다’며 전원을 꺼버린다. 인간에 대한 조롱이다.
결국 루퍼트는 늙어 죽고 갈라티는 거의 인간에 가까운 모습과 지적인 능력자로 변신해 살아가는 모습에서 그런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 앤드류가 죽자 그의 아내(사람)가 자신의 생명유지 장치를 꺼달라고 부탁하는 대상이 바로 그녀다. ‘바이센테니얼 맨’은 앤드류가 200년 넘게 살았듯, 인간도 과학의 도움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으며, 인류와 인공지능이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썼다.
 
▲ '블레이드 러너'
그러나 ‘A.I.’는 달랐다. 사람의 사랑을 갈구하고 그래서 자신을 사람으로 바꿔줄 천사를 찾아 2000년을 헤맨 ‘소년’ 로봇 데이빗이 만난 ‘천사’는 인류가 멸망한 뒤 지구의 주인이 된 살아있는 로봇, 즉 인공지능의 진화의 끝인 새 종족이었다. 결국 인류는 스스로의 오만과 욕심이 초래한 동물의 멸종과 생존환경의 파괴로 인해 자멸하고, 그 자만이 만든 인공지능이 스스로 진화를 거듭해 지구의 새 주인이 된다는 내용을 에둘러 그렸다.
‘엑스 마키나’가 예언한 블루독은 바로 알파고를 만든 구글이다. 구글의 목적이 설마 그 비싼 인공지능을 인류의 바둑이나 체스 상대로 만들고자 함일 리 없다. 우선 알파고는 첨단 의학에 투입돼 어려운 수술 등을 해결하는 일에 앞장섬으로써 사람이 의도한 제작의 목적에 충실하게 부응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영화처럼 인공지능이 스스로 생각하고, 성격도 갖추며, 고뇌하는 가운데 자연스레 진보를 거듭한다면?
참고로 고대 외계인의 문명전수 이론을 믿는 사람들은 고대 문명의 흔적에서 ‘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 기술을 전수했다’는 식의 내용이 담긴 고대 벽화 속 문자를 들며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뒷받침한다. 스캇은 ‘프로메테우스’에서 인류를 외계인이 진화(변화)한 종이라고 대놓고 떠들어댄다. 그렇다면 아직은 희망을 품어봄직한 시기다. 인류에겐 ‘사랑’과 더불어 ‘신’이 있으니까./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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