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종영된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신경수)는 이성계(천호진 분), 정도전(김명민 분), 이방원(유아인 분)의 조선 건국 이야기를 담고 있는 팩션 사극이다. 실존 인물인 세 사람과 가상 인물인 분이(신세경 분), 이방지(변요한 분), 무휼(윤균상 분)이 의기투합해 썩어빠진 고려를 뒤집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여기에 무명이라는 조직과 SBS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답게 밀본을 등장시켜 색다른 재미를 더하기도 했다.
특히 '육룡이 나르샤'는 길태미(박혁권 분)라는 그간의 사극에서 본 적 없는 독특한 캐릭터를 완성시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이 드라마의 연출자인 신경수 PD는 방송 전 촬영 당시 부담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육룡이 나르샤'를 가득 빛내준 수백명의 배우들에게 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이 혼재하다 보니 생각지 못한 긴장감이 많이 형성됐다. 연출자로서 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다 기억에 남고 애착이 가지만 조영규가 죽는 장면 촬영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세트에 창고를 지어놓고 촬영을 하는데 피투성이가 된 채 기어가게끔 디렉션을 줬다. 그 때 마침 문이 열려 있었다. 그래서 문 닫으러 가는 설정을 즉흥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민성욱 배우에게도 이 얘기를 했고, 그걸 받아줘서 다행히 그 장면이 나올 수 있었다."
- 이것과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배우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많이 수용해주는 연출자라고 소문이 파다하다.
"작가님들께서 마음을 열어주셔서 가능했다. 초반 대본의 내용이나 뜻을 잘 반영하는 선에서 현장 상황에 맞는 조금의 변화는 감독님에게 권한을 드릴테니 잘 만들어 달라는 얘기를 해주셨다. 그래서 대본과 틀어지지 않는 선에서 작업을 한 편이다. 저도 촬영 준비를 많이 하지만, 배우들도 준비를 정말 많이 해온다. 그들이 가장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연출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의 뜻을 많이 반영하는 편이다."
- 극 초반 길태미가 정말 큰 화제를 모았다. 그렇게 될 줄 예상했었나.
"그건 작가님들이 예상을 했다. 캐스팅을 할 때 길태미가 뜨지 않으면 실패라는 얘기를 하셨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았다. 제가 박혁권 배우와 여러 작품을 같이 해서 인연이 깊다. 배우나 저나 서로에 대해 잘 안다. 그래서 더 부담이 백배였다. 서로가 잘 아는데 새롭고 재미있는, 독창적인 캐릭터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잘할 것이기 때문에 100%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첫 촬영 할 때 '아이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주일만에 정리가 되더라. 배우 역시 초반에 힘들었다는 얘기를 했더라. 현장에서 재촬영을 한 적도 있고 최종원 배우가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분장팀 도움도 많이 받았다."
- 49부 무휼의 엔딩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장면은 촬영, 무술 감독의 공으로 돌려야 한다. 그 신이 그 날의 마지막 촬영이었는데 당일 편집이 끝나지 않아서 태안에서 찍다가 오후 2시쯤 서울로 와야 했다. 그래서 감독님들과 균상 씨에게 알아서 만들라고 했다. (웃음)"
- '육룡이 나르샤'에는 유독 연극 배우들이 정말 많이 출연을 했었다. 그 이유는 뭔가.
"사극 연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제대로 검증이 된 분들과 하고 싶었다. 또 캐스팅은 늘 신선하고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TV에서 많이 봤던 분들보다 새로운 분들로 캐스팅을 하고 싶었다. 육룡 배우들은 이미 잘 알려진 분들이니까 그들을 받쳐주는 분들은 연극 쪽 실력자들로 캐스팅을 했다. 제가 드라마를 하면서 받았던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마음에 연극을 많이 보는 편이다. 배우를 보러 가는 것도 있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 혹시 개인적으로 특별히 고맙거나 한 배우가 있다면?
"드라마에 330명의 출연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제가 200분 정도 직접 캐스팅을 했다. 그래서 한 분을 꼽기가 힘들다. '육룡이' 대본이 한 회 한 신 나오는 분들까지 연기를 잘 해야만 했고 그래서 캐스팅 과정이 굉장히 어려웠다. 그래서 대학생 때 봤던 공연까지 끄집어내 누가 좋을까 하면서 찾아내는 작업이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중반 이후부터는 친한 배우들에게 도움을 청해서 추천을 받아 직접 전화를 드렸다. 한 회 밖에 안 나오지만 해주실 수 있느냐고 정중히 여쭤보면 대부분 흔쾌히 해주신다. 사실 캐스팅 디렉터가 배우를 섭외해 현장에서 처음 보는 경우도 허다한데 전 그게 정말 속상했다. 배우야말로 현장에 와서 편안하게 있어야 베스트 연기를 할 수 있는데 현장에 왔는데 아무도 몰라라 하면 잘하던 사람도 실력 발휘가 안 된다. 그래서 현장 스태프들에게 '드라마 처음이니까 잘해야 한다. 분장실 어딘지 다 알려드려라'라고 지시를 한다. 그렇게 하면 배우들이 왔을 때 맞이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배우 역시 마찬가지로 '이 현장은 날 생각해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연기가 편해지고 잘할 수 있게 된다."
- 그런 의미로 초반에 등장했던 가짜 왜구 정승길 배우가 방송 후 연기 잘한다는 극찬을 많이 받았다.
"그 회차 나간 다음부터 작가님들이 제 캐스팅에 대해 100% 신뢰를 하게 되셨다. 다 끝내고 난 뒤 대학로 가서 배우들에게 한 턱을 내야 한다. (웃음)" /parkj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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