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그간 드라마에서 수없이도 그려진 적 있는 소재다. 영화 ‘내머리속의 지우개’부터 ‘천일의 약속’, ’리멤버‘까지 최근까지도 작품 속에 등장하며 사랑 받는 소재가 알츠하이머 혹은 기억 상실증이다.
기본적으로 연기력을 요하는 소재인 만큼 알츠하이머를 연기한 배우들은 모두 뛰어난 연기력을 입증받아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아왔는데, 그 중에서도 ’끝판왕‘이 나타났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성민이다.
이성민은 tvN 금토드라마 ‘기억’ 속에서 유능한 변호사 박태석 역을 맡았다. 태선 로펌에서 최상위의 승률을 자랑하며 부와 명예, 권력까지 모두 쥐었지만, 인생 최고의 황금기에서 알츠하이머라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을 만난 인물이다.
특히 지난 25일 방송에서는 알츠하이머 증상이 점점 악화되는 박태석의 모습이 그려졌는데, 이를 표현해내는 이성민의 연기가 압도적이었다. 박태석은 업계에서 여전히 잘 나가는 변호사였지만, 그의 일상은 어딘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눈을 감으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삐에로가 나타나 “정말 내가 누군지 기억 안 나냐”며 괴롭혔고, 아내 영주(김지수 분)와 비서 선화(윤소희 분)마저 의아해 할 정도로 기억력도 나빠졌다. 심지어 태석의 난봉꾼 부친 박철민(장광 분)은 사고치기를 멈추지 않았고, 영주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그의 주변에서도 사건사고가 벌어졌다.
무엇보다 엔딩 장면이 압권이었다. 그는 가족들에게 소홀했다는 미안함에 모처럼 외식을 하자며 영주와 아이들을 레스토랑으로 불러냈다. 하지만 약속 장소를 향해 걸어가던 중 기억을 잃은 것. 황망한 표정으로 잠시 멈춰서있던 태석은 곧 정신없이 주위를 방황했다.
그럼에도 기억이 떠오르지 않자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치며 “아직은 안 돼. 기억해 내. 기억해내라고”라고 오열했다. 두려움과 분노, 불안이 섞인 그의 표정과 행동이 태석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공감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이성민은 이미 수많은 전작들을 통해 연기력을 입증 받은 배우다. 특히 전작 ‘미생’에서는 오과장 역을 완벽히 소화해내며 ‘미생 신드롬’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억’ 속의 이성민은 그보다 더 물 오른 연기력으로 전작의 그늘을 지워냈다.
더 무서운 것은 어쩌면 드라마 속 알츠하이머 연기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을 이성민의 활약이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대단해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의 입맛이 높아지면 그만큼 업그레이드 된 연기로 보답하는 이 배우의 열정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 jsy901104@osen.co.kr
[사진] ‘기억’ 방송 캡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