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이경규가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눕기만 했는데도 시청률 최종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다. 개그맨들의 단두대로 여겨졌던 이 프로그램에서 첫 출연인데 한 획을 크게 그었다.
이경규는 지난 26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서 갓 태어난 강아지들과 함께 개인 방송을 꾸렸다. 앞서 개그맨 후배들이 처참하게 무너졌던 것과 달리 이경규는 여유가 넘쳤다.
개인기를 쏟아냈던 홍진경·조세호·남창희, 디제잉을 했지만 재미 없다는 지적 속 기죽었던 박명수, 박명수의 실패 이후 ‘무한도전’ 자선 경매 일환으로 ‘마리텔’에 출연해 온갖 험한 일을 다했던 정준하까지. 이들은 평소에도 웃기는 개그맨이 직업인지라 기대치가 높은 네티즌의 짓궂은 놀림에 당황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마리텔’은 예능인들의 단두대로 불렸다. 데뷔 36년의 이경규는 달랐다. 그는 정말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지만 웃음을 선사했다. 강아지들과 함께 혼자 떠들기만 했다. 피곤하다고 자꾸 눕는 신개념 방송을 했고, 그나마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하기 위해 시청자와 대화를 나눈 게 그나마 그가 한 일 중에 가장 노력을 기울인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방송 중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심지어 눕는 불성실하게 보일 수 있는 일이었는데 웃겼다.
웃기기 위한 역설적인 행동이었다. 자신만 하염 없이 바라보고 있는, 심지어 얼마나 웃길지 잔뜩 기대하고 있는 네티즌 앞에서 드러눕는 자신감을 보였다. 이는 30년이 넘도록 예능인으로서 큰 사랑을 받는 예능 대부 이경규니까 가능한 유연한 대처였다. 뭘 해도 네티즌의 구박과 짓궂은 장난이 펼쳐질 수밖에 없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평소대로 혼자 이야기를 한다든가 네티즌의 지적에 발끈하며 농담을 쏟아내는 이경규의 모습은 재미가 넘쳤다. 오히려 이경규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능글거림에 네티즌이 당황했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안겼다.
여기에 이경규의 따뜻한 애견인으로서의 면모가 부각됐다. 개에게 사람의 기준에 따라 압박을 하거나 사람 뜻대로 개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것. 자신의 강아지를 분양하는데 있어서 유기하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꼽아 강력하게 질문을 하는 이경규의 진지한 모습은 그가 얼마나 강아지를 사랑하고 투철한 책임감을 갖고 수많은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진정으로 강아지를 사랑하는 법을 알고, 강아지를 돌보는 법을 아는 이경규이기에 분양 예비 후보들과 대화를 마친 후 또 다시 천연덕스럽게 눕는 행동이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를 위한 장난으로 받아들여졌다.
숱한 프로그램을 이끌며 본인의 인기는 물론이고 프로그램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한국 예능 역사의 산증인. 스타들의 인터넷 방송이라는 새로운 시도로 요즘 젊은 시청자들의 입맛과 잘 맞아떨어지는 ‘마리텔’에서도 이 노장의 예능인은 출연하자마자 시청률 1위를 달성했다. 더욱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크게 웃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마리텔’의 새 역사를 썼다. / jmpyo@osen.co.kr
[사진] ‘마리텔’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