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메이드 성장드라마가 탄생했다. 3부작으로 짧게 기획된 것이 아쉬울 뿐이다. '페이지터너'는 우울하지 않으면서도 공감 가득한 이야기로 파릇파릇 십대들의 이야기를 예쁘게 그렸다. 작가의 탄탄한 필력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지난 26일 오후 첫 방송된 KBS 2TV 드라마 '페이지터너'(극본 박혜련 허윤숙 연출 이재훈)에서는 피아노와 얽힌 세 주인공 유슬(김소현 분), 차식(지수 분), 진목(신재하 분)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유슬과 진목은 예고 피아노과에서 각각 전교1,2등을 하며 서로를 견제하는 사이. 유슬은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자신을 피아니스트로 키우려는 엄마(예지원 분)의 집착으로 인해 지쳐있었고, 진목은 부모의 무관심 속에 관심을 받기 위해 피아노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두 아이는 만날 때마다 서로 으르렁댔다. 실기시험날, 유슬은 엄마의 권유에 따라 진목의 페이지터너를 자처했지만 치사한 방법으로 그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다. 반면 유슬의 페이지터너를 맡은 진목은 유슬의 악보를 피아노에서 떨어트리며 방해했다. 그러나 천재적인 재능의 유슬이 악보를 외워 피아노를 치는 바람에 더 비참함을 느껴야 했다.
그러다 갑자기 불행이 닥쳤다. 유슬이 엄마와 차를 타고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한 것. 유슬은 시력을 잃었고, 사실은 몰래 유슬이 잘못되길 빌었던 진목은 찔리는 마음에 꽃을 사들고 유슬의 병문안을 갔다.
같은 시간 장대높이뛰기 선수인 차식(지수 분)도 시련을 맞이했다. 개인 신기록을 기록하던 중 장대가 중요부위에 부딪혀 병원에 오게 된 것. 그는 병원에서 자신에게 척추 분리증이라는 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운동을 포기해야한다는 말을 들었다.
'페이지터너'의 특별한 점은 특유의 맑고 유쾌한 내용, 거침없는 전개, 순수한 주인공 캐릭터들에 있었다. 예를 들어 보통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유슬의 불행을 기도하는 진목의 캐릭터를 악인(?)으로 인식할 수 있었지만 진목은 생각보다 현실적인 캐릭터였다. 10대 소년답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꽃을 사 유슬을 찾아간 것. 운동을 못하게 돼 실의에 빠져있던 '무빡이'(무시하면 빡치는 아이) 차식이 그간 모르고 살았던 아버지가 유명한 음악가라는 말에 다시 희망을 찾는 대목은 캐릭터의 단순한 성격을 보여주며 보는 이들을 미소짓게 했다.
또 자살을 하겠다며 눈 먼 유슬이 뛰어내린 곳이 주차장였던 점은 이 드라마의 천진난만한 성격을 제대로 보여준 대목이었다. 실명을 한 채 "옥상이 어디있느냐"고 묻는 유슬의 말에 차식은 그를 주차장으로 데려갔고, 주차장 난간을 옥상이라 생각한 유슬이 뛰어내리자 그를 받았다. 진목과 엄마를 원망하는 유슬에게 "피아노 좋아하는 척, 착한 척 하면서 네가 엄마를 속인거네. 엄마 탓 하지 말라. 저 자식 탓도 하지말라"는 차식의 충고는 드라마의 주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드림하이', '너의 목소리가 들려', '피노키오'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박혜련 작가는 이번 '페이지터너'를 통해 어른들이 부여한 욕망 속에서 살아가던 청소년들이 자기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사랑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 김소현, 지수, 신재하는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각자의 통통 튀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했고, 시종일관 사랑스러웠다. 시청자들은 '볼만한 드라마가 탄생했다'며 이를 반기고 있는 상황이다. /eujenej@osen.co.kr
[사진] '페이지터너'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