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톡톡] ‘트럼보’, 칼보다 강한 신념의 펜
OSEN 라효진 기자
발행 2016.03.31 10: 28

 * 이 기사에는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1791년 12월, 미국에서는 수정헌법 제1조가 채택됐다. 연방정부의 권력 남용을 막고 시민들에게 종교·언론·출판·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영화 ‘트럼보’ 속 할리우드의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을 반대하는 ‘영화동맹’의 모임 장소 앞에서 이 수정헌법을 나눠 주며 탄압을 막으려 한다.
언뜻 ‘삐라’로 불리는 선전물을 연상할 수도 있지만, 이를 만들고 배포하는 행위 자체는 수정헌법이 말하는 자유에 근거한다. 누구나 사상을 가질 수 있고, 이에 대해 말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냉전시대의 도래 이후 반공주의자들은 ‘예술 하는 공산주의자’들을 향해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저 경계 수준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실상은 끔찍한 통제였다. 할리우드를 좌지우지하는 존 웨인(데이비드 제임스 엘리엇 분)과 칼럼니스트 헤다 호퍼(헬렌 미렌 분)을 필두로 하는 ‘영화동맹’과 미 의회가 만든 반미활동조사위원회(HUAC)는 합심해 할리우드 공산주의자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민주적 가치를 오염시키고 국가를 전복시켰다’는 이유에서다.

그 결과 당대 최고의 작가 달튼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톤 분) 이하 ‘할리우드10’은 그대로 밥줄이 끊긴다. 오랜 동지는 변절을 하고, 생활고는 극심해졌으며, 이웃들까지 노골적인 괴롭힘을 가했다. 의회가 개최한 청문회에서 증언을 거부했다며 ‘의회모독죄’로 기소당한  이들은 싸워보려 했지만, 빚과 피로감만 떠안았을 뿐이다. 이들의 온건한 투쟁은 범법이 됐고, 사상은 죄가 됐다. ‘할리우드10’이라는 거창한 이름 속 개인들은 매카시즘 광풍에 무참히 짓밟혔다.
결국 트럼보와 친구들은 백기를 든다. 그러나 이들은 이내 또 다른 투쟁 방법을 찾는다. 이름을 숨긴 채 삼류영화사에 극본을 파는 것이다. 당시 B급 영화들을 양산형으로 찍어내던 프랭크 킹(존 굿맨 분)과 마음이 맞았고, 11개의 가명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그러던 중 ‘로마의 휴일’과 ‘브레이브 원’은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암암리에 할리우드에는 트럼보가 이름을 숨긴 채 활동한다는 사실이 퍼진다. 3일이면 완성될 싸구려 대본으로 시작했던 달튼 트럼보의 저항은 스탠리 큐브릭의 ‘스파르타쿠스’ 크레딧에 선명히 떠오른 그의 이름으로 열매를 맺는다.
드디어 세상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트럼보는 “일할 권리를 막는 것 말고 매카시즘의 성과가 무엇이냐”며 반공주의자들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만든 블랙리스트의 잔혹함이 ‘로버트 리치(브레이브 원을 쓸 당시 트럼보가 썼던 가명)’을 만들었다고 일갈한다. 이제 온전한 자유를 찾은 트럼보의 눈에는 영웅도 악당도 없었다. 단지 서로를 반목하고 질시하게 된 희생자만 존재하는 이 상황이 전쟁처럼 참혹했을 뿐이다.
트럼보와 그의 동료들이 일궈낸 성취는, 우리가 획득해야 할 것이 누군가의 입을 틀어 막는 힘이 아니라 그들을 비판할 자유임을 역설한다. 이 기막힌 실화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신념이 범죄로 치부되서는 안된다는 주장 역시 하고 있다. 최근 부산영화제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사상 검증과 우스꽝스러운 탄압이 괜스레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하다.
타자기의 경쾌한 소리와 재즈 뮤직, 스크린에 자욱히 끼어 있는 담배 연기는 극의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 올린다. 예술가적 야심을 버리고 질 대신 양에 집착하게 된 작가 트럼보가 자신을 소진하다가 어느 순간 흰 종이 앞에서 느낀 공포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터다. 미국의 대표적 진보주의자 루이스 C.K.가 트럼보의 오랜 동료 앨런 허드로 분했다는 점도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가 될 듯하다. 오는 4월 7일 개봉. /bestsurplus@osen.co.kr
[사진] ‘트럼보’ 스틸컷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