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부는 사나이’에는 경찰들의 활약이 유독 돋보인다. 사실을 전해야 하는 언론은 중요한 순간 침묵을 하고, 대기업 총수의 편의에 따라 목소리를 바꾼다. 경찰 조직의 윗물도 깨끗한 편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공대와 위기협상팀만은 정의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보기 드문 순수함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9일 tvN ‘피리부는 사나이’에서는 방송국에 잠입해 무차별 총격 소동을 일으킨 후 혼란을 틈타 건물에 폭탄을 설치한 피리남의 계략이 공개됐다. 생방송 중 닥친 위기는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퍼졌고, 경찰 특공대와 위기협상팀은 빠르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 가운데서도 위기협상팀의 주성찬(신하균 분)과 특공대장 한지훈(조재윤 분)의 살신성인은 무모해 보일 정도로 과감했다. 극의 긴장감도 올라갔지만, 이들을 바라볼 때 드는 안타까움이 더 컸다. 거칠게 말하면 ‘입만 산’ 주성찬이 어떻게든 피리남을 막아보겠다며 그와 추격전에 육탄전을 벌인다. 주성찬은 생명이 위태로워 보일 만큼 흠씬 두들겨 맞으면서도 피리남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그의 도주를 막았다. 그에게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었고, 안 하기 보다는 하는 편을 택했다.
그런가 하면 한지훈은 건물에 설치된 폭탄의 존재를 알고 혼자 남아 제거 작업을 벌이겠다고 말한다. 폭탄 전문가도 아닌 그가 목숨을 걸고 폭탄을 만지는 광경은 고층 빌딩 옥상의 난간에 올라선 사람을 보는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폭탄에 연결된 마지막 두 개의 선 중 하나는 도화선이다. 그는 이 순간 아내 오하나(이정은 분)과 통화를 시도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빨리 끝내고 들어와. 오랜만에 밤에 맥주나 한 잔 하자”는 아내와 “맛있겠다”며 눈물을 삼키는 남편의 모습이 뭉클함을 자아냈다.
피떡이 되도록 얻어 맞거나, 한 순간의 선택에 목숨을 거는 긴박한 상황에 처하면서도 주성찬과 한지훈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이를 감내했다. 그러나 먼지 투성이 세상에 쓰러졌다가 겨우 일어난 이들에게 시민들은 너무나 가혹하다.
혼자 술을 마시던 주성찬이 위기협상가임을 알아본 취객들은 그에게 시비를 건다. 과거 협상을 들먹이며 그때 왜 그 사람을 못 살렸는가, 하는 등의 고전적 괴롭힘이 이어지자 주성찬은 예시를 든다. 수많은 승객을 태웠지만 브레이크가 고장난 열차와 선로 곁에 있는 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을 열차 쪽으로 밀면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겠냐는 질문이다. 이에 취객은 “그래서 사람을 미냐. 미쳤나”라며 “그렇게 구하고 싶으면 네가 대신 뛰어들라”고 윽박지른다. 사실은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이 우리를 지켜주는 이들의 현 주소일지도 모른다.
나쁜 경찰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좋은 경찰 이야기는 잘 회자되지 않는다. 시위 현장을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던 경찰의 모습은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지만, 이를 최대한 막아보려 한 경찰의 목소리는 ‘엑스파일’ 속 봉인됐던 녹취록에서나 들을 수 있었다. 오늘의 현실 속에도 존재하는 수많은 주성찬과 한지훈의 살신성인 역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피리부는 사나이’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