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후예’ 송중기와 송혜교의 사랑을 가로막는 방해물은 흔한 삼각관계도, 막장 예비 시어머니도 아니다. 세계 평화를 방해하는 무기 밀매 거래상 정도가 움직이고, 조국의 안녕이라는 이유로 이웃나라 눈치를 보는 정치 권력쯤은 가세해야 한다. 드라마 속 송중기는 보통의 현실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영웅이고 고난을 겪지만, 그래도 촌스럽지 않다. 심각하지 않기 위해 농담을 한다는 극중 설정은 흔하디 흔한 영웅 소재 블록버스터 영화에 질린 대중의 포용력을 높이고 있다.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가상의 땅 우르크에서 벌어지는 군인과 의사의 사랑 이야기. 생명의 존엄성, 세계 평화, 조국 수호라는 어떻게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수 있는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전혀 촌스럽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특전사 유시진(송중기 분)은 지뢰밭에 놓여 있어도 침착하게 피해가고, 총으로 잔뜩 무장한 갱단을 피해 연인 강모연(송혜교 분)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 지진으로 수많은 목숨을 잃은 후 경건하게 구조를 하고, 희생된 넋을 위한 묵념을 이끌 수 있는 인류애가 있는 남자다.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줄을 쏘는 것도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도 아닌데 웬만한 위협에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자신의 목숨은 내던지며 조국과 자국민을 지킨다. 그 일이 명예롭다고 믿는 군인이다. 명예를 위해 온몸을 바친다. 여자들의 제복에 대한 환상을 알고 있어 군인이 됐다고 농담하지만 말이다. 극적인 재미를 위해 ‘태양의 후예’는 시진과 모연의 하루 하루는 험난하다. 낭떠러지에 차가 매달리기도 하고, 머리에 총구가 겨눠지는 것은 이제 익숙한 일, 지난 30일 방송된 11회는 모연이 갱단에게 납치됐다.
11회 말미는 시진이 대한민국 군인이 아닌 모연을 사랑하는 한 남자로서 군인의 신분을 벗고 갱단에게 맞서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UN과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공식적으로 구출 작전을 펼치지 못한다는 청와대의 명령에 불복, 국민을 버리는 조국은 없다며 시진은 모연을 구하러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늘 미인과 노인과 아이는 지켜야 한다며 일관성 있게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하던 시진은 그렇게 자신이 지켜야 하는 자국민이자 사랑하는 모연을 살리기 위해 또 다시 목숨을 걸었다.
‘태양의 후예’가 다루는 이 같은 극한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 지구 평화를 운운하는 이야기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숱하게 봤던 소재. 이 드라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이야기 운용 방식을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미군에게 협조 요청을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지뢰 제거를 명령하는 시진이 ‘지구 평화는 미국이 지키게 놔두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이 같은 촌스러울 수 있는 주제를 유쾌하게 비튼다. 동시에 국가가 국민을 완벽하게 보호하지 않는다는 불안감과 현실 속에서 자주 마주 하게 되며 절망하는 수많은 시청자들을 위로하고 있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슬프게도 자국민을 보호하는 군인, 조국의 안녕이 곧 자국민의 행복이라고 믿는 시진의 멋진 모습에서 우리는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더욱이 심각한 위기에서도 심각하지 않기 위해 농담이 생활화 돼 있는 시진은 이 같은 어떻게 보면 일방적이고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소지가 많은 휴먼 멜로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단순히 매력적인 사랑과 감동적인 인간애를 다룬 드라마로 느끼게 하고 있다. / jmpyo@osen.co.kr
[사진] KBS 제공, '태양의 후예'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