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질질 끄는 법이 없다. ‘태양의 후예’ 김은숙 작가가 자칫 답답하고 무겁게 여겨질 수 있지만 재미를 위해 꼭 필요한 갈등 요소를 오래 끌지 않고 빨리 해결되는 이야기 전개를 보이고 있다. 고구마 전개는 ‘태양의 후예’ 사전에는 없다.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멜로 찍고 싶은데 늘 블록버스터”라는 군인 유시진(송중기 분)의 농담처럼 시진과 강모연(송혜교 분)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는 일상에서 흔히 발생하는 오해가 아니다. 정치와 외교가 마구잡이로 이들의 사랑을 훼방놓는 ‘스케일’이 다른 연애를 하고 있다.
조국을 지키는 명예로운 군인이 되고자 하는 시진은 언제나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고, 이를 지켜보는 모연은 불안해하면서도 점점 시진의 신념을 이해하고 포용한다. 그래도 매번 죽을 위기에 처하는 모연은 혼란스럽고, 지난 달 31일 방송된 12회는 급기야 납치돼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이르렀다. 폭탄까지 몸에 걸치게 된 모연, 그리고 조종 장치를 박살내기 위해 모연의 어깨를 향해 총을 쏜 시진. 두 남녀의 사랑은 아찔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늘 생명의 위협을 받는 시진과 모연의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가지 않는다. 두 사람이 위태로운 순간은 참 많이 펼쳐졌는데, 보통 1회 안에 그 위기가 끝난다. 대재앙이었던 지진 사태의 경우 구조 이야기가 펼쳐진 후 한숨을 돌리며 로맨스가 가동됐고, 다음 날 인명을 경시하는 진소장(조재윤 분)이 벌인 소동으로 인한 위기가 벌어졌다. 지진이 끝난 후에는 갱단의 위협에 시달리는 모연, 납치돼 죽을 뻔한 절체절명의 상황이 이어졌다.
계속되는 고난이긴 한데 흔히 말하는 고구마 전개는 아니었다. 위기는 보통 길게 펼쳐지지 않고 바로 바로 해결됐고, 그 속에서 시진은 멋있고 감동적인 영웅이었다. 심각하지 않기 위해 농담을 한다는 시진은 위기 속에서도 농담을 잃지 않으며 짐짓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었고, 위기를 극복한 이후에는 설레는 로맨스가 시청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2회에 또 한 번의 고난이 끝난 후 시진과 모연이 질투를 하며 장난을 치는 모습은 안방극장의 입꼬리를 올라가게 했다.
12회 말미에는 한국으로 돌아온 시진과 모연의 이야기가 예고됐다. 시진은 또 다시 목숨을 걸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모연과의 사랑 역시 또 다시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고구마 전개’라고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극적인 전개를 위한 갈등, 그 갈등은 흔한 블록버스터 영화와 비교했을 때 튀지 않고 비교적 수긍할 만한 수준으로 펼쳐지고 있고 김은숙 작가의 장기인 로맨틱 코미디 장치가 곳곳에 배치돼 긴장과 이완이 능숙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 같은 위기와 갈등 속 시진과 모연, 서대영(진구 분)과 윤명주(김지원 분)의 사랑은 더 애틋해지고 진중해지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 jmpyo@osen.co.kr
[사진] '태양의 후예'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