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갓은숙’의 클래스는 달랐다.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집필한 김은숙 작가가 등장인물들의 대사, 행동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 남다른 ‘떡밥’ 회수 능력으로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덕분에 시청자들 역시 ‘태양의 후예’를 보는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몰입할 수밖에 없는 것.
사실 16부작이든 50부작이든 상관없이 드라마를 쓴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작가 머릿속에서 그린 등장인물의 성격, 직업부터 하나의 사건으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그 결과까지 모두 짜임새 있게 표현해내야 하기 때문.
그래서인지 이미 등장했던 인물이나 소품, 사건, 대사를 고려하지 않아 개연성이 사라진 드라마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김은숙은 그야말로 귀신같은 회수 능력으로 대사와 행동을 활용해냈다.
예를 들어 ‘태양의 후예’ 5회에서 절벽 아래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 강모연(송혜교 분)이 오지 않는 유시진(송중기 분)을 원망하며 남긴 휴대폰 속 유언은 8회에서 공개 고백으로 활용됐다. 그저 긴박함을 극대화시키는 요소인 줄로만 알았던 유언 역시 김은숙 작가가 미리 계획한 소재였음을 알 수 있다.
소재만 그러한가? 대사도 마찬가지다. 8회에서 강민재(이이경 분)를 구하다가 다친 자신의 어깨를 걱정하는 강모연을 본 유시진은 “나 일 잘하는 남자다. 내 일 안에 내가 안 죽는 것도 포함됐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대사는 11회에서 유시진이 아구스(데이비드 맥기니스 분)에게 납치당한 강모연을 안심시키기 위해 다시 사용됐다. 심지어 “나 일 잘하는 남자인 거 알지 않냐. 울지 말고 기다려라”라는 더 멋있게 갈고 닦아진 채였다.
‘구원커플’의 경우도 빼놓을 수 없다. 넘을 수 없는 신분의 차이로 윤준장(강신일 분)의 반대에 부딪쳤던 서대영(진구 분)과 윤명주(김지원 분)는 마침내 9회에서 교제 허락을 받아냈었다. 하지만 서대영이 군복을 벗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었고, 이 사실을 모르는 윤명주는 그저 기뻐하는 모습이 그려졌었다.
하지만 11회에서는 윤명주가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증세가 점점 악화되던 윤명주는 부친 윤준장에게 전화를 걸어 “나 안 죽으면 서상사 군복 벗기지 마라. 그러지 마라”라며 “나 그때 다 들었어. 근데 둘이 같이 있는 게 너무 좋아서 모른 척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9회에서 그려졌던 것처럼 윤준장이 교제 허락을 했다고 밝히는 서대영의 앞에서 펄쩍 뛰며 기뻐하다가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윤명주의 모습이 그려지며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김은숙 작가의 뿌린 떡밥 회수는 셀 수 없을 정도. 작품에서는 그 작품을 만든 작가가 조물주인 셈이다. 그야말로 ‘갓은숙’이라는 수식어의 값어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태양의 후예’의 인기는 괜한 것이 아니었다. / jsy901104@osen.co.kr
[사진] 태양의후예 문화산업전문회사 & NEW 제공, '태양의 후예'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