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만우절같은 장국영의 죽음과 걸작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4.02 14: 38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대한민국 영화 팬들에게 홍콩영화는 각별하다. 저우룬파(주윤발) 때문에 성냥개비를 입에 무는 게 유행했고, 트렌치코트가 패션의 필수 아이템이 됐으며, 밀키스라는 생소한 음료수가 널리 음용되기도 했다.
저우가 남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다면 남녀노소 모두를 사로잡은 홍콩의 대표 무비스타는 아무래도 청룽(성룡) 다음으로 장궈룽(장국영)일 것이다. 장이 세상을 떠난 날이 거짓말처럼 만우절인 4월 1일이었다. 벌써 13년이 됐다.
이 만우절은 프랑스 혹은 인도에서 시작됐다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정설은 없다. 다만 가벼운 선의의 거짓말로 한 해를 즐겁게 보내는 시작으로 삼자는 의도만큼은 공통적이다. 영어권에서는 ‘April fool’s day’라고 한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하드록 그룹 딥 퍼플은 12분짜리 명곡 ‘April’에서 ‘April is a cruel time’이라며 영국 시인 T. S. 엘리어트의 5부작 서사시 ‘황무지’를 인용하면서 ‘4월은 암흑의 계절’이라고 처절하게 노래했다.
‘황무지’ 역시 인간사에서의 신념과 소신의 부재로 인해 발생한 정서적 황폐함으로 인한 삶의 부정적인 한탄을 토로한다. 마치 장이 만우절에 호텔 유리창 밖으로 몸을 던진 것처럼.
장은 1980년대 영화를 즐긴 한국 관객들에게 참으로 많고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청이 중국 무술을 접목한 코미디로 매년 추석과 설 연휴의 가족애를 탄탄하게 다져줬다면 저우는 홍콩 누아르의 허무주의를 통한 젊음의 고뇌를 사고하게 만들었고, 그런 모든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둔 불안과 어두움과 청춘의 방황, 그리고 젊은 정서적 충동은 장이 모두 채워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1980~90년대다.
 
▲ '동사서독'
다수의 관계자들은 그의 필모그래피 중 걸작으로 ‘영웅본색’(1986) ‘천녀유혼’(1987) ‘아비정전’(1990) ‘패왕별희’(1993) ‘동사서독’(1994) ‘해피 투게더’(1997) 등을 손꼽는다. 물론 관객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백발마녀전’도 ‘성월동화’도 '천녀유혼도'도 유작인 ‘이도공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다수가 그의 필모그래피 중 단연 작품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으로는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필수항목으로 집어넣는다. ‘아비정전’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다.
‘아비정전’의 주인공 아비(장)는 어려서 친어머니에게 버림받은 후 계모 밑에서 자란 자신을 ‘발 없는 새’로 표현한다. 또 버림을 받을까봐, 혹은 자신이 버리는 여인이 상처를 입을까봐, 그는 사랑하지 않고 감정을 느끼는 찰나만을 즐긴다. 그는 사랑에 무책임한 듯하지만 책임 때문에 사랑을 갈무리하고, 방탕한 듯하지만 사랑 앞에 한없이 나약할 따름이다.
발 없는 새인 그는 홀로 맘보춤을 추며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분노와 서운함을, 결국 자신의 인생을 아파하는 자기연민을 달랜다.
‘발이 없어 죽을 때까지 날기만 하다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쉬는 새가 딱 한 번 날개를 멈추고 땅에 내려 쉴 때가 있는데 그땐 죽는 것’이라던 그는 ‘그 새는 어느 곳에도 가지 못했다. 왜냐면 처음부터 죽어있었으니까’라고 말한다. 
양성애자였던 장은 결혼하지 못한 한 여인을 그리워했고, 이후 남자 연인과 살았지만 항상 외로워했다. 무엇이 그의 고독의 성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는지는 그밖에 모르겠지만 수많은 여자들의 연인이었고, 숱한 남자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는 정작 스스로 쌓은 고뇌의 심연 속에서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어 도시의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내던져 내면의 영생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왜냐면 그가 바로 ‘발 없는 새’였으니까.
‘동사서독’ 이후 6년 만에 왕 감독의 ‘디렉터스 컷’ 버전으로 재공개된 ‘동사서독 리덕스’의 구양봉(장궈룽) 역시 ‘발 없는 새’에 다름 아니었다.
동쪽의 백타산을 떠나 서쪽의 사막 한 가운데에서 홀로 사는 그는 살인청부 중개인이다. 매년 복사꽃이 필 무렵 그에게는 황 약사(량자후이, 양가휘)란 친구가 찾아온다. 어느 날 어김없이 나타난 황 약사는 한 여자가 줬다며 취생몽사란 술을 선물로 내놓는다.
황 약사는 오래 전부터 동쪽의 백타산을 찾아 자애인(장만위, 장만옥)을 만났었다. 옛 연인의 형과 결혼한 뒤 아들을 낳은 그녀는 아직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황 약사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래서 그녀를 볼 핑계로 복사꽃이 필 때마다 구양봉을 찾았다. 자애인이 바로 구양봉의 옛 연인이었다.
구양봉은 강호 최고의 검객이 되기 위해 자애인을 버리고 백타산을 떠났고, 구양봉이 떠난 후 자애인은 그의 형과 결혼했다.
자애인은 향 약사에게 말한다. ‘그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했다. 자신의 형과 혼인하던 날 그는 내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왜 잃고 나서야 얻으려 하지? 난 이해할 수 없다’고. 
얼마 후 그녀는 죽었다. 그녀는 죽기 전에 취생몽사를 주면서 구양봉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은 끝내 잊지 못하고 죽지만 구양봉만큼은 자신을 잊고 더 이상 괴로워하면서 살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6년 후, 황 약사는 동해의 도화도로 돌아갔다. 스스로를 도화도주라 칭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동사(東邪)라고 불렀다.
 
▲ '해피 투게더'
입춘이 지나고 봄이 오지만 황 약사는 구양봉을 찾아오지 않았다. 구양봉은 자애인이 죽었다는 편지를 받는다. 백타산으로 돌아간 그는 서독(西毒)이라 불렸다.
구양봉은 사랑 앞에 솔직하지 못했다. 아니, 정직하려 하지 않았고 비겁했다. 그건 황 약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심지어 비열했다. 그건 역시 출세를 추구하는 남자들의 속성 때문이다. 그들은 발(배경, 지위)이 없었기에 그것을 얻고자 몸부림치던 갈 곳 잃은 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사랑은 잃고 한쪽 발만 얻은 절름발이가 돼 ‘사악한 독’이라 불렸던 것이다. 장의 배우로서의 값어치는 외면한 채 다수의 성적 취향과 다르다는 이유로 일부 보수적 시각과 종교적 이유로 비난하는 사람들은 아마 그를 그렇게 부를지도 모른다.
‘해피 투게더’는 아예 게이가 주인공이다. 여기서는 맘보가 아니라 탱고다. 음악은 터틀스의 제목과 달리 전혀 행복하지 않은 분위기의 ‘Happy together’다. 동성애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는 관객들 중 상당수조차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영화적 완성도, 그리고 장과 량차오웨이의 깊은 연기력에는 혀를 내두른 채 감격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보영(장)과 아휘(량차오웨이, 양조위)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는 이민자다. 예민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보영과 달리 아휘는 무게중심이 튼튼한 남자다. 둘은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 다른 차이점 탓에 자주 다투고 그래서 결국 헤어진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그리워하며 괴로움에 아파하며 산다. 그들은 이과수 폭포를 이상형으로 손꼽아 기다리며 살지만 정작 정착하는 곳은 대만이다.
이 영화가 개봉된 때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해다. 중국 대만 홍콩 등 자신들의 뜻과는 달리 3개 ‘나라’의 아이덴티티를 갖고 살아야 했던 중국 젊은이들의 혼돈과 방황과 혼란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랑이 미치도록 그리웠지만 쉽게 사랑할 수 없었던 불투명한 미래를 정말 아프게 그려냈다.
장이 함께 작업한 훌륭한 감독과 뛰어난 배우는 수두룩하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장은 홍콩의 남자 배우 중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아름다운’ 마력과 우수를 동시에 지닌 유니크한 인물이고, 그래서 그의 짧지만 장렬한 죽음은 마치 만우절의 우화처럼 매년 팬들의 가슴을 헛헛하게 만든다.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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