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일국을 사극 전문 배우라고 일컫곤 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무관에서 문관 캐릭터로 변신에 성공한 그는 이제 더 화끈한 변신을 앞두고 있다. 이렇게 열린 마음이 된 것에는 물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가장 주요한 원인이 됐다는 말에 왠지 모를 뭉클함도 느껴졌다.
송일국은 최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KBS 1TV 드라마 ‘장영실’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종영소감부터 앞으로의 마음가짐까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드라마 속 캐릭터였던 장영실을 연기한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 송일국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장영실’은 조선왕조 500년을 통틀어 손에 꼽는 위인 중 하나다. 신분사회였던 당시 노비라는 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과학을 발전시켰던 학자. 우주에 대한 관심이 강했던 장영실을 연기하기 위해 송일국은 연기의 톤을 바꿔야 했다. 장군 같은 우렁찬 외침보다는 호기심 어린 질문이 필요했던 것. 이렇게 또 다른 모습의 송일국을 대중에 선보인 셈이다.
다음은 송일국과 나눈 일문일답.
-드라마 종영 소감이 어떤가.
이렇게 짧은 사극은 처음이라 하다 만 것 같다. 드라마 특성상 CG가 많아서 사전 제작을 많이 했다. 또 워낙 감독님이 밤샘을 싫어하신다. 지금까지 사극 촬영 중에 체력적으로 제일 쉽게 했다. 다만 정신적으로는 힘들었다. 과학 용어가 많아서 대사가 어려웠다. 뇌가 흘러내리는 줄 알았다니까.(웃음)
-위인 장영실로 살았던 소감은 어떤가.
안타까웠다. 솔직히 작품 하기 전에는 그렇게까지 대단하신 분인 줄 몰랐다. 하면서 느꼈다. 너무 시대를 앞서간 천재가 아니었나. 지금 태어나셨으면 한국의 과학을 빛내셨을 텐데.
-사극을 많이 했지만 이번엔 다른 종류의 캐릭터다.
톤 조절이 힘들었다. 내려놓으려고 했다. 지금까지 장군 아니면 왕이어서 톤 자체도 힘이 좀 들어갔는데 지금은 노비에서 출발하다보니까 그런 걸 많이 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스트레스 푼다고 소리도 많이 질렀다. 매일 굽실거려야 하니까 좀 짜증도 났고.(웃음)
-계속해서 역사적 인물을 맡는 이유가 있나.
저도 궁금하다. 저에게 그런 역이 계속 오는지 말이다. 그런데 장영실은 좀 의외이긴 했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 아이들에게 선물이라고 했던 게 기존에 갖고 있던 이미지를 많이 바꿔줄 것 같았다. ‘장영실’ 감독님도 생각 못 했는데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면서 송일국에게 저런 면이 있었구나 생각했다고 하셨다.
-대하사극치고는 짧아서 아쉬웠던 점은 없었나.
살을 조금 더 빼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감독님과 약속했는데 못 지켜서 죄송하다.
-댓글 중에 노비가 너무 잘 먹은 거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다.
본의 아니게 곰 같은 캐릭터로 가게 됐다.
-댓글 잘 보는 편인가.
잘 안 본다. 그런데 이런 점이 있다. 제 꺼는 안 보는데 자식 꺼는 보게 되더라.
-삼둥이 인스타그램 계정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저도 놀랐다. 2주 만에 백만 팔로워를 돌파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하차한 걸 아쉬워하시고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되게 궁금해 하시는 것 같다. 예전부터 계정은 만들어놨는데 좋은 사진을 찾으려고 하다보니 늦어졌다. 마침 드라마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집에 외장하드가 한 20테라 있다. 농담이 아니라 블랙홀 하드라고 한다. 들어오기만 하고 나오질 않는다.
-또 다른 예능에 나올 생각은 없나.
없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아이들이 주인공이니까 결심한 거다. 사실 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유동근 선배한테 전화해보자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오셨고 그분의 판단에 걸어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전화로 아마 저의 장점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서 하게 된 거다. 인생의 멘토 같은 느낌이다. 제가 작품 판단 잘 안 설 때 전화를 많이 드린다. 이번 ‘장영실’ 때는 잘하고 있다고 계속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사극 이미지가 강해서 사극 출연을 피하려 했다고 했는데.
그래서 ‘장영실’을 한 거다. 제가 문관보다는 무관 이미지가 강해서 정 반대되는 캐릭터였으면 바랐을 때 딱 들어왔다. 얼굴이 클래식해서 사극에 잘 맞는 것 같다. 실제로도 보면 시대극이 더 잘됐고. 그렇지만 이제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 다 하려고 한다. 아이들 키우는데 정말 돈 많이 든다. 죽을 것 같다.(웃음)
-아버지가 되고 현실적으로 바뀌게 된 건가.
연기를 대하는 시야도 많이 바뀌었다. 아이들 태어나고 많이 바뀌었다. 또 저는 못 느끼겠는데 남들이 봤을 때 부드러워졌다고 하더라.
-최근에는 장영실이 일본에 수출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의미가 남달랐을 것 같다.
사실 감독님이 나중에 말씀해주셨는데 제가 ‘장영실’에 캐스팅되고 반대하는 분들도 많았다고 하더라. 가장 큰 시장이 일본인데 일본 판매가 어려울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런데 꽤 비싼 값에 판매됐다고 한다. 대하사극 중에 아마 가장 비싼 값이 아닐까 싶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물론 저한테는 떨어지는 건 없다.(웃음) / besodam@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