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시리즈가 tvN을 대표하는 드라마로 손꼽히기 전 또 다른 시리즈물이 있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전파를 탄 '로맨스가 필요해'가 그것. 33살 여자들의 일과 사랑, 우정을 그린 이 드라마는 로맨스물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를 집필한 이는 정현정 작가다. 그가 KBS로 넘어와 새로운 드라마를 쓴다고 했을 때 '로맨스가 필요해'나 마니아 층의 엄청난 사랑을 받은 '연애의 발견' 같은 작품이 탄생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건 주말극이었다.
하지만 정현정 작가가 쓰니 주말극도 달라졌다. 여자 주인공은 친구에게 남편을 빼앗긴 아이 셋을 둔 엄마이고 남자 주인공은 아내와 사별해 장인-장모와 함께 사는 인물이라는 점이 '막장'스럽지만 결과물은 전혀 그렇지 않다.
3일 방송된 KBS 2TV '아이가 다섯' 14회에선 안미정(소유진 분)이 자신에게 차갑게 구는 이상태(안재욱 분) 때문에 속앓이 하는 내용이 그려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누구보다 다정하고 옆에서 살뜰히 챙겨준 그였지만 어느 순간 매섭게 돌아선 이상태이기 때문.
안미정은 울면서 "왜 나한테 거리를 두냐"고 물었고 이상태는 "우리 그렇게 가까운 사이 아니다. 안 대리가 나한테 너무 사적인 걸 많이 보여 줬다. 하지만 우린 공적인 사이다. 그동안 귀찮고 성가셨다"고 차갑게 답했다.
사실 두 사람은 서서히 자신의 가슴에 서로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안미정은 아이 셋을 둔 엄마이자 가장이었고 이상태 역시 남매를 키우며 처가 식구들까지 데리고 사는 남자였다. 두 사람에게 두 번째 사랑은 신중하고 어려운 현실이었다.
이를 정현정 작가는 담담하면서도 먹먹하게 그려냈다. 서로를 배려하며 길에서 모른 척하는 장면을 엇갈리게 연출했는데 이상태의 시선과 안미정의 시선을 시간차를 두고 표현해 시청자들을 더욱 뭉클하게 만들었다.
정현정 작가의 대표작인 '로맨스가 필요해' 시리즈와 '연애의 발견'은 남녀 주인공의 연애를 실감나게 그려 호평을 받았다. 명대사 역시 대거 탄생한 작품들이다. '아이가 다섯'은 본격 로맨스 코미디물이 아닌 주말극인데도 주인공들의 사랑이 천천히, 하지만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MSG 없는 정현정 작가의 주말극이 안방을 따뜻한 핑크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comet568@osen.co.kr
[사진] '아이가 다섯'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