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묻지 않은, 아직 애기에요.”
올해로 스물넷이 된 배우 신재하에 대한 매니저의 설명이다. 애기라는 단어는 한참 어리고 귀여운 동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도, 때 묻지 않았다는 말에는 그 누구라도 적극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방영 중인 KBS 2TV 3부작 ‘페이지터너’ 속 날카로움은 온데간데없이 시종일관 미소 띤 얼굴로 차근차근 생각을 전하는 모습이 순수한 소년 그 자체였다.
지난 2014년 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SBS ‘피노키오’로 데뷔, 매력적인 외모와 신인임에도 어색함 없는 연기로 시선을 사로잡은 신재하는 현재 ‘페이지터너’로 첫 주연을 맡아 청춘 배우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이번 작품은 데뷔 이래 첫 주연작인 만큼 그 의미가 남다르다.
“부담 많았어요. 무서웠죠. 홀로 캐릭터의 감정선을 끌고 갔던 경험이 없어서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했거든요. 제가 알기로 작가님께서 ‘피노키오’를 보시고 저를 한 번 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다고 들었는데, 일단 작가님께서 전에 제 얘기를 했다는 것도 부담이었어요. 그리고 소재 자체가 피아노 연주신이 굉장히 많아서 그런 걸 하면서 감정표현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죠. 결과는 다행히 나쁘지 않게 잘 나온 것 같아요.”
이번에는 지수, 김소현 등 또래 배우들과 함께 한 만큼 그 시너지 효과도 톡톡히 봤다. 그렇지 않아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청춘들이 빼어난 영상미와 짜임새 있는 전개와 만나 더욱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낸 것.
“‘발칙하게 고고’라는 드라마를 했을 때도 다 또래들이었어요. 제 나이 비슷한 배우들은 또래들이랑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큰 것 같아요. 저희끼리 항상 하는 말이 선배님들 많으신 것도 좋지만 편하게 얘기하고 장난 칠 수 있는 현장이 편하고 좋은 것 같다고 하거든요. 특히 지수랑은 ‘발칙하게 고고’ 하기 전부터 오디션장에서 많이 만났었어요. 최종에 같이 간 적도 있었고 그 때부터 알고 지내서 더 편하죠. (김)소현이는 이번에 실물을 처음 봤는데, 아역 때부터 해오던 친구라서 그런지 지수랑 나중에 했던 얘기가 확실히 ‘선배는 선배’라는 거였어요. 여유도 있고 상대 배우의 호흡에 맞춰서 해주는 게 있더라고요. 저보다 6살이 어린데 굉장히 어른스러워서 ‘누나’라고 부를 뻔 했어요(웃음).”
신재하가 연기하는 서진목은 ‘사이코패스’라고 불릴 만큼 날카로웠지만 애증의 라이벌 윤유슬이 사고로 인해 시력을 잃은 후부터 묘하게 변하는 인물인데, 극중 그 과정이 워낙 매끄럽게 그려진 탓에 그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피아노과 학생인 만큼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 빠질 수 없는데 이 역시 그를 한층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페이지터너’는 ‘발칙하게 고고’가 촉박하게 촬영하고 있었을 때 미팅 잡혔다고 해서 촬영장에서 대본을 봤었어요. 너무 하고 싶어서 되게 열심히 봤죠. 잠 잘 시간에도 대본보고 오디션 가서도 감독님께 제가 생각한 진목이는 이러하고 이렇게 감정선이 부각될 것 같고, 캐릭터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 모습을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아요. 피아노는 실제 연주를 해야 해서 레슨도 받고 밤을 새워서 연습했어요. 사실 피아노를 치면 악보만 보거나 건반만 보면 되는데, 극 중에서는 상대를 보면서 웃을 때도 있고 째려볼 때도 있고 감정 변화가 많다 보니까 정리를 해야 되는데 많아서 시간도 많이 걸렸었고 다른 두 친구도 굉장히 시간을 많이 들였죠.”
각고의 노력 끝에 신재하는 서진목이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고 시청자들 역시 호평을 보내고 있지만, 그의 실제 모습과 서진목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서진목이 예민하고 오만하고 냉철한 성격이라면, 신재하는 예의바르고 긍정적이고 수줍었다.
“제가 서진목이었다면 열등감을 느끼기보다 ‘진짜 잘한다. 나 좀 가르쳐주라’라고 했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성격을 바꿨어요. 원래는 집에서 전형적인 장남이었거든요. 힘든 거 얘기 안 하고 불만 다 참고. 근데 그게 연기할 때 방해가 많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원래 생활 패턴의 반대로 살았어요. 술자리도 안 좋아했고 밤늦게 밖에 있는 것도 안 좋아했었는데, 연기 할 거면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 년 동안 아예 반대로 해서 살았죠. 처음에는 이렇게 인터뷰를 해도 정말 바보처럼 했어요 긴장해서. 성격이 외향적으로 되다보니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대학생인 배우들 대부분이 연극영화를 전공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신재하는 뮤지컬과를 재학 중이다. 덕분에 롤모델 역시 뮤지컬에서 높은 이름값을 자랑하고 있는 선배인 조승우라고.
“원래는 뮤지컬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중3 때 우연히 뮤지컬을 봤는데 계속 마음에 남아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다가 1년 정도 다니고 예고로 편입했어요. 그때부터 뮤지컬 쪽만 바라보고 춤과 노래를 계속 배웠었는데, 대학 때 아는 누나가 ‘너는 드라마나 영화는 안 하냐’고 물어봐서 ‘촬영해보면 어떨까’ 생각해서 그때부터 회사도 알아보고 들어와서 영화 찍고 드라마도 찍게 됐어요. 지금은 뮤지컬에 대한 욕심은 없다. 뮤지컬은 30대에 하고 싶거든요. 30대 후반으로 넘어가야 노래하는 목소리가 무르익는다고 하더라고요.”
교복이 잘 어울리는 탓일까. 신재하는 24살의 성인임에도 대부분 학생 역을 도맡아 해왔다. 배우에게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일이란 의무이자 목표이기 때문에 이 점이 아쉽지 않을까 했는데, 신재하는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항상 작품에 대해서 버킷리스트를 적어놔요. 근데 신기하게도 세웠던 것 중에 반 이상은 했어요. ‘너를 기억해’에서는 살인범, 액션도 했고 ‘피노키오’에서 악역도 했고, 또래 배우들이랑 학원물도 해봤고. 차근차근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에는 사극에 욕심이 나서 제일 해보고 싶고, 기회가 되면 메디컬 드라마도 해보고 싶어요. 사극은 막연하게 하고 싶은데, 만약에 하게 되면 몸 쓰는 걸 좋아해서 검쓰고 말 타고 활 쏘고 그런 역할이 하고 싶어요.”
젊은 나이부터 꿈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지만, 그만큼 포기해야하는 것도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기회비용은 아마 청춘이지 않을까.
“작년까지는 대학 생활이 아쉬웠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랑 같이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에 2학기 때 학교를 다녔었는데 2주 다니고 ‘발칙하게 고고’를 들어가서 다시 휴학하게 됐죠. 여건이 안 돼서 지금은 내려놨어요.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20대가 가기 전에 ‘발칙하게 고고’ 하면서 친해진 지수, 이원근, 차학연이랑 여행을 갔으면 좋겠어요. 얘기는 하고 있는데 스케줄이 너무 안 맞으니까.
올해는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시상식에 참석하는 것이 목표라는 배우 신재하. 소박하지만 진지한 그의 말은 연기에 대한 진지함이 돋보이는 가운데, 먼 미래인 10년 후에 대해서도 기대하게 만들었다. 과연 10년 후 신재하는 얼마나 큰 꿈을 가지고 있는 배우로 성장해있을까.
“최근까지는 이런 질문에 ‘믿고 보는 배우’가 좋겠다고 대답했었거든요. 그게 욕심이 났었는데 계속 캐릭터를 맡아서 연구하고 신경 쓰고 하다 보니까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굉장히 의미가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배우 신재하라고 불렸으면 좋겠어요. 그 이름의 무게가 무섭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고, 굉장히 의미가 있는 수식어인 것 같아서요.” / jsy901104@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