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노민의 데뷔는 비교적 늦은 축이다. 평범한 회사원에서 CF 모델로, 이어 연기자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왔다.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얼굴과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어울리는 중년 로맨스부터 의외의 악역까지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며 입지를 다진 그다. 그런 전노민이 영화 ‘위대한 소원’으로 본격 코믹 연기에 도전했다.
전노민이 이 영화에서 맡은 역할은 루게릭병에 걸린 아들 고환(류덕환 분)에게 뭐든 해 주고 싶은 열정적인 아버지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는 아들과 그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관객석에 눈물 바람을 일으킬 것만 같지만, ‘위대한 소원’은 그런 생각들이 무색해질 만큼 유쾌한 작품이다. 죽기 전 동정 딱지를 떼고 싶다는 고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려 하는 두 친구 남준(김동영 분)과 갑득(안재홍 분)의 고군분투는 물론이고 이에 합세한 고환부(전노민 분)의 어설픈 조력까지 웃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로부터 고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은 고환 부는 괴로움에 시달린다. 그러던 중 루게릭 환자와 그 아버지의 감동적 마라톤 도전기를 보게 된 그는 고환과 이에 도전하려 한다. 결연한 표정으로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맨 후 체력 단련에 나서는 고환 부의 모습은 자못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턱없이 부족한 체력에 매번 다리가 풀리고 마는 그는 날계란 한 판을 사발로 들이키는가 하면 엉덩이를 쭉 뺀 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운동을 하며 힘을 기른다.
가까스로 고환과 마라톤에 나서지만, 안 그래도 모자란 체력이 휠체어까지 끌며 달리니 금세 바닥날 수밖에 없다. 그의 헐떡이는 숨소리를 듣고 있는 고환의 표정도 영 마뜩찮았지만, 아버지의 귀여운 이기심은 보는 이들에게 웃음과 짠한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아버지가 아닌 남자의 마음으로 고환에게 공감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육룡이 나르샤’의 홍인방도, ‘추적자’의 서영욱도, ‘사랑과 야망’의 장홍조도 아닌 한 명의 천방지축 아버지만이 있었다. 때로는 한없이 로맨틱하고 때로는 끝도 없이 비열했던 전노민이 제대로 망가진 결과물은 무척 훌륭했다.
지난 7일 열린 ‘위대한 소원’의 기자간담회에서 전노민은 코미디 영화를 통해 색다른 변신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재미있는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무거운 역할만 했었다”며 “남대중 감독이 내게 있던 고정관념을 깨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통해 코믹한 영화나 드라마 섭외가 들어왔으면 한다는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이날 “극 중 모습이 어색할 줄 알고 걱정했다”고 말했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외려 앞으로 전노민이 펼칠 코믹 연기에 더욱 기대감이 커졌다. 그야말로 ‘위대한 소원’에 걸맞는 ‘위대한 변신’이었다. 오는 21일 개봉. /bestsurplu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