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민에게는 모든 게 대표작이다. 맡기만 하면 오롯이 그 배역에 몰입해 이전 캐릭터를 몽땅 잊어버리게 만드는 마력이 있기 때문. 이성민이 흡사 빙의라도 한듯 연기하고 있는 드라마 '기억' 속 박태석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괜히 '갓성민'이 아니다.
겨우 바닥부터 차곡차곡 안간힘을 쓰면서 올라왔는데, 난데없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성공한 변호사면 이제 무엇하나. 모든 것들이 머릿 속에서 하나둘 삭제될 운명에 처했다는 사실은, 어쩌면 인간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간이 서서히 목 조여온다.
하필 그런 상황에 뺑소니로 죽은 아들에 진범의 단서가 보일듯 말듯하고, 살아있는 아들은 학교에서 따돌림과 폭행을 당한다. 죽을 만큼 싫지만 하나뿐인 아버지는 과실치사로 유치장에 갇힌다. 자신이 몸담은 로펌은 클라이언트의 치졸한 사생활을 위해 자신에게 소송을 일임한다.
우울하다. 지난 9일 방송된 '기억' 역시도 이런 사건들이 연장선상이다. 더욱이 알츠하이머가 갈수록 진전되고 있다는 것은 보는 사람들까지 초조하게 만든다. 기억을 잊고, 길을 잃는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혼한 전처와 현재의 처를 자꾸 뒤틀려 착각한다. 죽었던 동우가 기억 속에서 살아났다가, 다시 죽기를 반복한다.
'기억'의 태석은 아마도 이성민이 인생 캐릭터로 기억될 거 같다. 모든 것을 숨기고, 태연하고 사람 좋게 웃는 그의 모습이 이날은 더 씁쓸하게 보였다. 이제 그에게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 gato@osen.co.kr
[사진] '기억'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