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배우가 민낯을 공개했다. 그야말로 민낯이었다. 항상 완벽하게 꾸며진, 화려한 모습만 봐왔던 이들은 30대 여배우의 민낯에 쓴 소리를 쏟아냈다. 하지만 여배우는 침착했다.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고 이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배우 임수정 이야기이다.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 근래 SNS를 시작한 임수정은 자신의 SNS에 민낯 사진을 올렸고, 민낯에 대한 댓글들이 이어지자 임수정은 "평소 저는 제 나이를 정확하게 인지하며 살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나이 먹음'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임수정이 이처럼 민낯을 공개하고, 나이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나이 덕분이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생각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는 임수정은 최근 가진 영화 '시간이탈자' 인터뷰 자리에서 역시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달라진 생각은 배우 임수정도 중요하지만 사람 임수정, 여자 임수정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받은 배우 임수정의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임수정의 생각이었다.
덩달아 작품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아니, 달라졌다기 보다는 예전보단 한층 자유로워졌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상업영화만 고집하는게 아닌, 적은 예산의 독립영화도 임수정의 마음을 당기고 있고,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드라마에도 생각이 열려있었다. 나이 먹는 것이 임수정에겐 눈살을 찌푸릴 일이 아닌, 자연스럽고 기대되는 일이었다.
다음은 임수정과의 일문일답.
- 30대 중반을 넘어갔는데 과거와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
▲ 분명히 변해가는 것 같다. 가치관들도 달라지고 있다. 지금도 작년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내 삶에 있어서 중요한게 뭔지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예전에는 일 밖에 몰랐다. 그렇다고 왕성한 활동을 했던 건 아니지만 30대 초반까지 일 밖에 몰라서 개인의 삶을 돌보지 못했던 것 같다. 30대가 되고 나서 가장 중요한건 커리어도 중요하지만 내 개인의 삶도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인간 임수정, 여자 임수정의 삶도 중요하기 때문에 조화를 잘 맞춰가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 차곡차곡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이가 드니까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인거다.
- 작품을 보는 기준도 달라졌나.
▲ 좀 더 자유로워진 것 같다. 이번 '시간이탈자'도 사실 남자들의 추적 스토리이고 멜로는 밑에 깔려있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것 같다. 할리우드 배우들, 예를 들면 케이트 블란쳇 같은 경우 블록버스터에서 매력있는 캐릭터를 하고 또 '캐롤'같은 연기도 하지 않나. 너무 상업영화라는 틀 안에서만 하는게 아니라 상업영화에서 주어진 역할을 감사하게 하고 저예산영화에서도 여배우 감성, 여자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에 참여하면서 자유롭게 활동을 해나가면 충무로에서 오래오래 배우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 '시간이탈자'는 왜 선택했는지. 여자 캐릭터가 장치적인 역할을 하는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 않았나.
▲ 딱히 그런 기준이 있었던 건 아니다. 장치적인 역할을 해도 될 만큼 '시간이탈자' 시나리오가 재밌었다. 여자 캐릭터가 장치적인 역할이라고 하더라도 두 남자 배우가 사건을 쫓아가는 동기 부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의미가 있었다. 캐스팅 제의를 받을때도 조심스럽게 제의를 해주시긴 했다. '임수정이 참여해준다면 너무 좋겠다'라고 하셨다. 정중한 제의였던거다. '시나리오가 재밌는데 왜 안해?' 이런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참여를 하게 됐고 촬영 과정은 지금까지 손꼽힐만한 현장 분위기였다. 팀 호흡도 정말 좋았고 뭐니뭐니해도 감독님은 오래 영화계에 계셨기 때문에 감독님의 관록과 리더십이 어마어마하셨다. 그런 감독님을 중심으로 스태프들과 배우진들의 팀웍이 너무 좋았다. 고민없이 즐겁게, 사랑 듬뿍 받으면서 촬영을 했었어서 만족도는 컸던 것 같다.
- '동안' 이미지가 강했는데 요즘은 조금은 자유스러워진 것 같다.
▲ 지금도 나이에 비하면 어려보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보고 있는데(웃음). 여자 임수정, 인간 임수정의 삶과 배우의 삶의 조화를 잘 이루고 살고 싶단 생각이다. 모든 것이 전문가들의 손길로 완성된 모습도 좋지만 그밖에 다른 일상의 모습도 나인거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지 않나. 애써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던 건 아닌데 SNS를 처음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스러운 모습을 더 보여줄 수 있는 창구가 생긴거다. 지금이 더 좋은 것 같다. 보여주고 소통할 수 있다보니까 오랜 팬들도 좋아하지만 임수정이라는 배우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는 대중도 '임수정이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볼 수 있으니 좋은 것 같다.
- 쉬면서는 주로 무얼 하나.
▲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싱글 생활을 이기적으로 보내고 있는거다(웃음). 친구들도 만나고 아는 사람들 만나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을 한다.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들도 그렇고 고민도 하고. 개인적으로 배울 게 있으면 배우기도 하고 책도 읽는 걸 좋아한다. / trio88@osen.co.kr
[사진] 호호호비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