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 ‘시간이탈자’는 시공간의 교차를 소재로 합니다. 더 정확히는 주인공의 꿈을 통해 1983년과 2015년의 시간이 뒤엉키며 생기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타임슬립과 타임워프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들이 넘쳐나는 최근, 이 영화는 꿈을 매개로 한다는 차별점을 갖고 있습니다.
32년 전의 분위기를 위화감 없이 재현하는 데는 연출의 힘이 크게 작용합니다. ‘시간이탈자’ 제작진은 1980년대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뉴스들을 검토하며 구체적 콘셉트를 잡아갔다는데요. 지금은 촌스럽게 느껴지는 당시의 풍경들을 그대로 가져오기 보다는 따뜻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따 오는데 주력했다고 합니다. 콘크리트 바닥에 매번 흙을 깔 정도로 느낌을 살리려 노력했다네요.
이렇게 완성된 배경 속을 마음껏 뛰놀 배우 선택도 매우 중요합니다. ‘시간이탈자’는 배우 조정석이라는 카드를 꺼냈습니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납뜩이 역을 통해 1990년대의 공기를 스크린에 옮기는 데 제대로 일조했던 경력이 있는 배우입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2015년 건우(이진욱 분)의 일상을 꿈으로 보게 되는 음악교사 지환으로 분했습니다. 2015년 이미 결과로 기록된 사건들을 바꾸기 위해 과거를 움직이려 나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입니다.
1980년생인 그에게 1983년이란 멀면서도 가까운 기억일 텐데요. 조정석은 지난 5일 열린 ‘시간이탈자’의 기자간담회에서 1983년의 인물을 연기했던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는 “촬영 당시를 떠올리면 재밌고 즐거운데, 오늘 영화를 처음 보고 나니까 고생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흘러 간다”면서 “마지막 액션 장면이 있는데 가장 고생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습니다. 익숙지는 않았을 시대를 배경으로 러닝타임 내내 비에 젖거나 얻어 맞고, 뛰어다녔던 그의 고생이 짐작되는 대목이었습니다.
약혼자 윤정(임수정 분)의 죽음을 막기 위해 범인 추적에 여념이 없었던 지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조정석은 “열심히 뛰어다닌 것 밖에 없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어 “배우 조정석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스토리에 잘 묻어날 수 있는 역할을 원했다”며 “장르에 목적성이 분명하니 더 열심히 뛰어다녔던 것 같다”고 덧붙였죠. 그러면서 “저는 제 헤어스타일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너스레를 떨어 간담회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덥수룩하면서도 구레나룻 부분을 길게 기른 그의 머리 모양은 1983년으로 돌아가 행인 한 명을 데려다 놓은 듯 재현에 충실했습니다.
다소 촌스러울 수도 있는 역할을 맡은 것에 대해 조정석은 “저는 과거가 잘 어울리나 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자신의 매력으로 꼽는 의견은 개인적으로 기분 좋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네요. “‘과거도 어울리는 남자’. 참 좋지 않나”라는 그의 말이 또 한 번 취재진을 웃겼습니다.
사실 그가 과거의 선생님을 연기했던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08년 상연된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에서도 선생님 역할을 했었는데요. 조정석은 “그런 역할을 해 봤던 터라 1980년대 선생님들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 같고, 1980년생이라 80년대도 살고 90년대도 살아 봐서 그 시절의 냄새와 향수를 기억하고 있다”며 “오르간을 쳐 주시던 옛날 선생님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잔상으로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역할이 ‘시간이탈자’에서도 많이 도움이 됐던 모양입니다.
‘시간이탈자’의 곽재용 감독은 조정석을 자신의 페르소나라고 밝혔습니다. 지환이라는 인물에 감독의 모습과 그가 꿈꿨던 것들을 담았다는데요. 조정석은 “다시 태어나면 이진욱씨로 태어나신다고 하셨다”라고 짓궂게 응수했습니다. 이토록 유쾌한 조정석이 ‘시간이탈자’에서는 목숨을 건 애절한 사랑에 나섭니다. ‘옛날 사람’이 되길 거리끼지 않는 조정석의 모습은 오는 13일 극장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osensta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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